은서-첫 만남
회의실은 늘 같은 온도로 유지된다.
스물두 도.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온도. 나는 이 온도가 싫다. 너무 중립적이어서, 아무 감각도 남기지 않는다.
나는 은서다. 변호사다.
이 로펌에서 일한 지 7년째다. 어소시에이트로 들어와서, 시니어 어소시에이트가 됐고, 내년이면 파트너 심사를 받는다. 순조롭다.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은서 변호사는 일 잘하죠.” “똑똑하고 꼼꼼해요.” “클라이언트들이 좋아해요.”
나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한다.
하지만 밤에 혼자 집에 돌아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은 새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이다.
제약회사. 규모가 큰 곳이다. 대표는 도현이라는 이름의 남자다. 나이는 예순을 넘긴 것 같다. 프로필 사진에서 본 그는 단정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회색 정장을 입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얼굴. 회색 머리, 깊은 눈가 주름, 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 미소는 없었다.
회의실 문이 열린다.
그가 들어온다. 비서 두 명이 뒤따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다. 악수. 그의 손은 예상보다 따뜻하다.
“은서 변호사님이시죠.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한다. 그는 내 맞은편에 앉는다. 비서들은 옆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오늘은 계약 조항 검토를 위주로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준비해온 서류를 펼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나는 익숙하게 설명한다. 조항 하나하나, 리스크와 대응 방안, 협상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 그는 질문을 던진다. 예리하다.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회의는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가 말한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직업적인 미소. 나는 이 미소를 얼마나 많이 지었는지 모른다. 거울 앞에서 연습한 적도 있다. 친근하되 거리를 유지하는 미소. 유능해 보이되 위협적이지 않은 미소.
“필요하신 게 더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나는 명함을 건넨다. 그는 명함을 받아 들여다본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가 말한다.
“저녁 식사 괜찮으세요?”
나는 멈춘다.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차분하고, 정중하다. 하지만 질문의 무게가 달라졌다. 나는 안다. 이것이 업무의 연장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오늘이요?”
“네. 시간 되시면요.”
비서들은 노트북을 닫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대화를 듣지 않는 척한다. 나는 잠시 생각한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클라이언트와의 식사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혼자 식사를 제안했다. 비서들은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나는 대답한다.
그가 미소 짓는다. 처음으로. 그 미소는 프로필 사진에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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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여덟 시.
호텔 라운지 바. 그는 먼저 와 있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앉는다.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방금 왔습니다.”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메뉴판을 받는다. 와인을 주문한다. 그는 얼음이 녹은 위스키 잔을 바라본다.
“일은 오래 하셨어요?”
그가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7년. 로스쿨 졸업 후 바로 이 로펌에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나는 솔직하게 답한다.
“하지만 익숙해요.”
그가 웃는다. 쓴웃음 같은 것.
“익숙하다는 건, 때로는 슬픈 말이죠.”
나는 그를 본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있다. 성공한 남자의 얼굴이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다.
와인이 온다. 나는 한 모금 마신다.
“회사는 잘 되시나 봐요.”
“겉으로는요.”
그가 말한다.
“사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항상 더 크게, 더 빠르게. 멈추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한다. 나도 그렇다. 멈추는 순간,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 같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일 이야기, 업계 이야기, 가끔 사적인 이야기. 그는 질문을 잘한다. 나에 대해 묻는다. 어디서 자랐는지, 왜 법대에 갔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나는 대답한다. 솔직하게. 이상하게도, 이 남자 앞에서는 거짓말이 필요 없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흐른다.
바는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줄어든다. 우리는 여전히 앉아 있다. 그의 위스키 잔은 비었고, 내 와인 잔도 바닥을 보인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가 묻는다.
나는 잠시 멈춘다. 이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다. 클라이언트는 보통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다르게 물었다.
“법률 자문이 더 필요하신가요?”
“아니요.”
그가 말한다.
“그냥, 이야기가 좋아서요.”
나는 그를 본다. 그의 표정은 진지하다. 농담이 아니다.
“그럼 업무가 아니라는 거죠?”
“네.”
그가 대답한다.
“그래도 괜찮으세요?”
나는 와인 잔을 내려놓는다. 생각한다.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이 남자는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비슷하다. 외롭고, 피곤하고, 무언가를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
“좋아요.”
나는 대답한다.
그가 미소 짓는다. 안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일어선다. 계산은 그가 한다. 나는 사양하지 않는다. 호텔 로비로 나가는 길, 우리는 나란히 걷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말한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각자의 차로 간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시동을 건다. 백미러로 그를 본다. 그도 차에 타고 있다. 잠시 후, 그의 차가 먼저 출발한다.
나는 핸들을 잡고 앉아 있다.
무언가 시작된 것 같다.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