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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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은 의심할 여지없이 좋기 때문에 걱정 없이 펼쳤다. <밝은 밤>에는 주인공과 엄마, 할머니 삼대가 등장한다. 책의 대부분은 주인공이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그 이야기에는 할머니의 어머니까지 포함되니 사대의 이야기다. 100여 년에 걸친 여성의 연대.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함은 나만의 밝은 밤이다.
자기가 한 밥을 먹고 맛있다고 말해준 사람도 증조모에게는 새비 아주머니가 처음이었다. 증조모는 그 아이 같은 얼굴을 오래 보고 있기가 어려웠다. 증조모의 마음이 새비 아주머니에게로 기울어서, 그곳으로 기쁨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모두 흘러갈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기운 마음으로 뒤뚱거리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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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 역할 이외의 엄마를 상상해본 것은 채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내 미래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그런가. 그냥 철이 좀 든 건가. 문득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 날들이 종종 있었다. 학교에선 어떤 아이였는지, 누구와 어떻게 놀았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같은 것들을 물었다. 엄마가 해준 이야기들은 재밌었지만 죄다 처음 듣는 것이었고 이 재밌는 이야기를 어째서 들려주지 않았던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왜 이제야 물어본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나의 지금을, 떠나보내기 아쉬울 만큼 빛나는 시간을 나는 결국 잊게 되는 걸까. 어렴풋이 짐작만 하는 이 미련을 엄마는 겪어냈을까.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혹시 사회가 만든 나이와 결혼 같은 것일까. 아니면 혹시 나의 존재일까.
우리 가족들은 종종 엄만 요즘 태어났으면 뭐라도 됐겠다는 말을 하는데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다. 엄마에겐 네 명의 남자 형제가 있었고 그 시절엔 응당 그러하듯 외할아버지는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대학을 보내지 않으셨다. 후에 외할아버지는 이 일을 후회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던 엄마는 가까운 대학에 원서를 넣어 4년 전액 장학으로 졸업까지 하신다. 그런 사람이다. 아직도 반짝이는 눈으로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엄마이지 않았으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엄마라는 역할로 묻혀버린 그는 어쩌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안다. 엄마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내가 그의 삶을 후회하는 일이 모순됨을. 나는 엄마에게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인 것도 안다. 엄마는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우릴 만날 수 있는 같은 길을 선택할 것을 안다.
하지만 엄마,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가끔 다른 엄마를 그려봐. 빛나는 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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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주인공과 삼천이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말걸’ 하는 후회를 한다. 좋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고 아깝다고도 한다. 그런 삼천에게 새비는 그저 충분하다고 생각해달라 청한다. 지나는 시간은 그저 그거면 충분한 거구나. 그렇게 끝을 알더라도 같은 길을 선택하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