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읽는 이유

<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by 박카스맛젤리


1

내가 SF를 읽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하나의 글은 하나의 세상이다. 분명 이곳과는 다른 어떤 세상을 궁금해하고, 무언가를 기대하기도 한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들어가 본다. 시간은 뒤틀리고 공간은 흐른다. 인간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우주는 삶의 터전이 된다.


그렇게 타인의 상상력을 빌려 도망친다. 여기가 아닌 곳으로. 새로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으며 한참을 그 세계에서 부유한다. 그러다 문득 되돌아보면 결국 그곳도 이곳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 오해하고 이해하고 상처 주고 위로하는, 지겹고도 당연한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나면 또다시 실망하고 동시에 안도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게 SF를 읽는다는 것은 여행하는 것과 그 목적에서 일치한다. 기대와는 다른 무언가를 얻어 온다는 점에서 그 결과에서도 일치한다. 매번 실망할 거면서 왜 계속 시도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금은 멀리 보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2

그러니까 SF는 구축된 새로운 세계에서 인간이 (혹은 다른 생명체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내 성격이 모나서 설득력이 없는 세계에는 들어가지지 않는다. 뜬금없이 뿅 하고 몸이 바뀐다던가 하는 판타지는 몰입이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보영의 소설은 ‘사이언스’와 ‘노블’ 사이의 정확한 무게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탄탄한 논리 위의 세계에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후회하고 용서하는 사람들이 산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3

시간, 우주, 언어, ….

이 책에 실린 10개의 단편은 많은 주제를 안고 있지만 모든 작품에 깔려있는 과학을 대하는 인간적인 시선에 계속해서 놀라게 된다. 냉정한 줄만 알던 이 세계(?)를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오늘 또 도망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