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영화 '파수꾼' 리뷰

by 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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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자살에 의문을 가진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조로 영화는 진행된다. 기태, 동윤, 희준은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그 선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보경을 좋아하는 희준은 보경의 시선을 받는 기태에 질투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반면, 엄마가 없다는 것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기태에 희준은 일격을 가한다. 기태는 이에 복수라도 하듯, 희준에게 계속적이고 은밀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희준은 폭력을 수용하며 저 나름대로의 오기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 둘을 지켜보던 동윤은 기태가 아닌 희준의 편에 서게 되고,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한 기태는 결국 자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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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관계 속의 균열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무엇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됐는지 모른다. 이는 저마다 가진 복잡한 역사들이 한 공간, 한 순간에 결합이 되는 순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관계들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칼날을 꺼내든다는 것이다. 이 칼날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지키기 위한 도구이다. 이는 본능적으로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 내면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태는 희준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희준은 그 폭력을 수용하는 방식으로써 자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 칼날은 갈수록 무뎌지기 마련이다. 갈등이 반복될지언정 해결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 기태는 희준과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 여러 번의 대화를 시도한다. 자신이 저질렀던 폭력을 부인하지 않고 사과를 한다. 하지만, 희준은 이를 받아주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폭력을 가한 뒤 사과를 하지만 이를 받아주지 않아 다시 주먹을 날린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정확한 시작점을 알 수는 없지만, 기태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불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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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의 배경에는 다양한 소통의 불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동윤과 희준, 그리고 기태는 사소한 감정의 축적으로 인해, 기태의 아버지와 기태 사이엔 엄마의 부재로 인해 생긴 간극이 있었다. 그들은 대화나 상호간의 교류를 통한 각자의 진심을 교환하지 못했기에 그것을 메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 틈은 상호간의 소통으로서 메꿀 수 있다. 개인이 걸어온 길과 주변의 풍경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인들 간의 균열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해야한다. 지금껏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풍경을 보았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말해야 한다. 말해야만 간극을 좁힐 수 있고 그 안을 메꿀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도덕적인 결론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말 한마디임은 분명하다. 파수꾼은 이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