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와 고독의 향연

영화 '아노말리사' 리뷰

by 니버

깊은 주름만큼이나 삶에 대한 권태가 짙게 배어나오는 중년 남성 작가 마이클 스톤. 그는 자신의 저서 '고객을 어떻게 대할까'에 대한 강연 스케줄 때문에 한 호텔에 하루를 묵게 된다. 그러던 중, 자존감이 전무한 리사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 대한 연민은 곧 번쩍이는 사랑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녀를 만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늪처럼 축축하고 기분나쁜 일상에서 벗어나 찬란하기만 한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낄 때가 있다. 관계의 첫 단추를 끼울 때는 나의 모든 신경세포들을 동원해 깊게 몰입한다. 그 날의 공기와 냄새마저 색다르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 같고 숨막힐듯한 새로움이다.

그러나 곧, 관계의 온도는 차갑게 식어간다. 상대방의 꼴도 보기 싫은 점들만 쏙쏙 보이고 모든 행동이 거슬린다. 다른 의미에서의 신경 세포가 살아나게 된다. 이 때 세상의 모든 배경은 무채색이다.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타성에 젖은 세상이다.

권태가 찾아오는 순간은 구역질이 날만큼 당황스럽다. 묵직한 그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자꾸만 붙잡는 것 같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터덜터덜 걷는 기분이다. 하지만, 오래지않아 그 터널은 끝이 나고 우리는 다시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을 보게 된다.


아노말리사는 이처럼 오르락 내리락, 사랑과 권태가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그린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마치 눈부시도록 밝은 무대 위에 있다가 조명이 꺼진 뒤에야 관객들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관객들은 인간이다. 그제서야 사람들 한명한명의 맨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번쩍이는 순간에는 모든 것들이 희망차 보이지만 어둠이 찾아오면 정적만이 맴돌뿐이다.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고독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불타오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신의 전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