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춘몽' 리뷰
초등학교 때, 짝꿍과 나란히 앉아있는 긴 책상 정중앙에 연필로 금을 그어놓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인위적으로 금을 그어놓음으로써 내 것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했고 나 역시 그 것을 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금 넘으면 손목맞기’라는 무시무시한 벌칙까지 정해놓으면서 우리는 철저히 스스로 그어놓은 약속에 복종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우개로 슥슥 문지르면 사라질 덧 없는 계약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춘몽의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든다. 병든 아버지를 모시며 혼자 ‘고향주점’을 운영하는 만주출신 예리와 동네에 한 명쯤은 있을법한 건달 익준, 떼인 돈을 받지도 못하는 탈북자 정범, 하는 일도 없이 농땡이 치는 간질 환자 종빈. 그들 중 누구도 예리에게 직접적으로 호감을 표하지 않으며 몰려다니면서 주변에 서성이기만 한다. 예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다 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이 2% 부족한 인간들은 서울인 듯 서울 아닌 수색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유랑한다.
한번은 넥타이를 맨 한 남자가 동물원에서 혼자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정빈은 ‘넥타이 맨 사람이 왜 저래?’ 라고 묻는다. 익준은 말한다. ‘쟤나 우리나 똑같은 병신이야’라고. 이와 비슷하게, ‘살기에 남한이 나은지 북한이 나은지’에 대한 질문에 정범 역시 살다보니 다 똑같다고 답한다. 익준의 말대로,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하게 온전한 사람은 없다. 수색역의 사람들은 경계 그어진 것들을 위에서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예리는 예외다. 그녀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와중에 그에 꼭 들어맞는 유연석(오토바이남 역)을 우연히 만난다. 이후 ‘고향주점’으로 찾아온 그를 따라나선 뒤 죽게 된다. 꿈에 그리던 남자를 만나자마자 죽는다는 것은 예리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을 품었다는 뜻이다.
사실 보는 내내 불안하고 먹구름 위에서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예리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것들을 꿈꾸고 그 외에의 것들에는 거리를 둔다. 자신만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들어오는 사람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곤 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은연한 경계선을 그어놓고 이쪽 아니면 저쪽에 서 있으려고 한다. 그래야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한낱 봄날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춘몽은 말한다. 우리는 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 눈에만 보이는 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