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랑으로의 이행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뷰

by 니버

할머니 댁에서 집으로 가기위해,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환기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이유로 셀린과 제시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셀린은 소란스러운 커플을 피해 제시의 옆자리에 앉게 되고 그들은 기차만큼이나 빠르게 서로에 대해 빠져든다. 제시의 어설프지만 귀여운 청유에 셀린은 비엔나에 내려 같이 여행하기로 한다. 하룻밤의 찬란한 사랑임을 알기에 그들은 작별인사를 미리하고 그 순간을 즐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 그들은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새로운 어딘가로 가는 모험은 늘 위험과 낭만을 동시에 안겨다준다. 여행과 사랑이 그렇다. 기차 혹은 상대방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싣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순간,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그렇듯 그러한 것들에 대해 더 매료된다. 이러한 설레는 초조함은 언제나 반갑다.


하지만, 셀린과 제시는 지속된 만남을 망설인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이 발목을 잡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지금의 포근한 행복이 여행이 주는 마법 같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렇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를 속이며 담담한 어른인 척 선상 위 카페에서 미리 작별인사를 나눈다.


오늘의 해가 밝았다. 우울한 마음에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하프시코드에 괜히 귀를 기울여본다. 쓸쓸하게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서로를 눈에 담는다. 셀린의 기차시간에 맞춰 플랫폼에 들어오지만 그들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영영 보지 못할 것처럼 애틋한 키스를 한다. 그리고 곧,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이 이성적인 어른의 모습이라고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는다. 제시의 ‘다시 만나자’라는 말 한마디에 그들 사이의 애틋한 긴장의 끈은 너무도 쉽게 끊어져버린다. 한여름 밤의 장난 같은 사랑이었을지라도 그들은 다시 만나기로 한다.

눈빛이 킬링포인트

사실, 셀린과 제시는 지금의 너무도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처럼 영원히 박제된 채로 기억의 저 편에 묻어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평생을 약에 취한 듯 몽롱한 행복 속에서 부유할 수 있고 상처받을 일 또한 없다.


그럼에도, 6개월 후 같은 플랫폼에서 서 있을 상대를 꿈꾼다는 것은 더 성숙한 사랑으로의 이행이다. 다음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꿈같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환상의 차원에서 현실의 차원으로의 용기 있는 첫 디딤이다. 또 다른 기차에 몸을 싣는 것이다. 어떤 목적지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곳이 어떤 곳이든, 거기로 닿기까지의 여정은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의 필수조건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