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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Aug 23. 2017

단편적인 일상의 조각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더 테이블' 리뷰

 유진과 창석, 경진과 민호, 은희와 숙자, 혜경과 운철, 그리고 그들 앞에는 한 테이블이 놓여있다. 지금은 친구로, 그러나 예전에는 연인이었던 유진과 창석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된다. 유명한 배우가 된 유진은 유쾌한 긴장감을 느끼며 창석을 기다리지만, 창석은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TV에서만 보던 배우가 앞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해야겠다는 마음에 흠뻑 젖어있을 뿐이다. 이에 유진은 가만히,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경진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민호를 만났다. 호감을 느끼고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려는 시점에 민호는 인도로 여행을 떠나 그들의 사랑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더듬어 붙잡고 있었다. 경진은 그 새 음식전문 잡지사에 취직했고, 민호는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고 싶어한다. 음식을 대접할 테니 평을 내려달라는 민호의 말에 옅어졌던 그들의 관계에 다시 온화한 색채가 더해진다.

 은희와 숙자는 이제 막 모녀가 되었다. 숙자는 은희의 결혼식 엄마다. 결혼식을 앞둔 은희는 자신뿐만 아니라 결혼할 사람과 시댁 식구들의 신상정보까지 브리핑을 하듯 뱉어낸다. 이를 받아 적던 숙자는 자신의 죽은 딸애 결혼식 날짜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둘 앞에 놓여있던 공허함은 일순간 채워진다. 숙자는 은희의 사돈댁에게 인사를 드리는 연기를 하고, 은희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잘하셨어요’라는 한 마디만을 꺼내놓는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엄마, 그리고 딸이 되어본다.


 흐릿한 눈빛으로 창문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혜경을 바라보는 운철. 혜경 역시 텅 빈 눈동자로 애써 웃어 보이며 뒤돌아 운철을 본다. 혜경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운철을 사랑하고, 운철 역시 그러한 혜경을 사랑하지만 밀어내고야 만다. 혜경은 눈물 지으며 ‘마음 가는 길과 사람 가는 길은 다르다’는 말을 던지고, 그들은 각자의 길을 그렇게 내려간다.


 나지막하고 따스하게 스며드는 햇빛부터 창가에 흐드러지는 빗물까지. 익스트림 클로즈업부터 화면의 반절이나 여유가 있는 정면까지. 이처럼 이 영화의 모든 것은 단편적이다. 배경부터 인물, 서사 모두 조각조각 분할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분할은 조화롭다. 차와 커피가 우려내지는 그 순간 다양한 삶의 군상과 층위들은 테이블 위에 겹겹이 쌓여 덧대어진다.


 우리의 삶은 조각나있지만 멀리서 보면 조화로우며, 조화롭지만 가까이 보면 조각나있다. 그저 스쳐 지나간 인연과 시간과 말들이 나무 테이블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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