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많은 노인분들과 마주서게 된다. 그 때마다 그들의 공허하고 헛헛한 눈동자, 깊게 패인 주름 등이 나의 모든 신경을 앗아간다. 나는 왜 항상 노인들에게서 이러한 표정의 얼굴을 읽어내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던 어느 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이러한 나의 무의식적인 신경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제시했다.
용접공 일을 그만두고 사냥을 하며 지내던 를르윈. 마약범들의 돈을 훔쳐 달아나면서부터 목숨이 걸린 한탕의 게임판에 뛰어들게 된다. 그를 좇는 무자비한 안톤 쉬거. 그에게는 특별한 살인동기 따위는 없어 보인다. 반면, 노쇠한 보안관은 이 둘의 치열한 레이스를 꿰뚫어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상황을 조망하기만 할 뿐이다. 결국, 죽은 를르윈을 본 보안관은 그제서야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주인공 보안관을 비롯하여 주유소 사장, 택시드라이버, 호텔카운터 아주머니 등 다양한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세상이 다가와도 침착하고 무덤덤한 모습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무력감에 휩싸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무력감은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체화된 것이다. 이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인 삶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체념과도 같다.
영화 속 택시드라이버는 를르윈에게 말한다.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고. 그는 처음 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한마디를 툭 던진다. 이처럼 노인들은 그저 방관하거나 나름의 위로와 조언을 던질 뿐이다. 녹록찮은 세상살이에 노쇠한 노인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인간이 받아들여야하는 먹먹한 숙명처럼 느껴진다.
반면, 젊은 를르윈이나 안톤 쉬거는 소용돌이 같은 세상 속에서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를르윈은 자신이 위험한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안톤 쉬거 역시 를르윈이라는 타겟을 처리하고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처럼 이들이 사는 세상은 동전 뒤집듯 우연적이고 역동적인 세상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데, 이 말은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자신의 목숨을 걸만큼 스릴 넘치는 게임을 하면서 그들은 주저 없이 미래를 만들어간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이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보인다.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 젊을 때에는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있기 때문에 삶을 꾸리는 데에 주저함이 없고, 미래를 잘 내다보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에 맞춰 변화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변방으로 몰리게 된다. 이러한 인생임을 알기에 노인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늙는다는 것은 물밀 듯 들어오는 심적인 공허함을 체념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육체가 노화함에 따른 허탈함과 사회로부터 밀쳐진다는 생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공허함의 원천일 것이다. 그저 삶의 풍파를 견디고 남은 힘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우연적이고도 위험한 세상을 살아내는 젊은이들과 그 세상의 변두리에 서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