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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an 23. 2018

The Show Must Go On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원더휠'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놀이공원에 있는 관람차를 상상해보자. 마치 콩 껍질 안에 콩이 들어앉아 있듯이, 하나의 커다란 관람차 안에 한 칸 한 칸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를 이루며 타고 있다. 어떤 칸에는 로맨틱한 연인이, 다른 칸에는 의무적으로 추억을 쌓는 권태기 커플이, 또 어떤 칸에는 화목을 바라는 가정이 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세계 속에 있지만 결국 그들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돌고 또 돈다. 관람차가 멈출 때까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찬 미국의 한 놀이공원, 코니 아일랜드. 지니는 이곳 웨이트리스로, 소싯적 배우였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현재를 버티며 살고 있다. 여기저기 방화를 하고 다니는 사고뭉치 아들 리치를 위해 자신을 사랑해주는 새 남편 험티와 함께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험티의 딸 캐롤라이나가 갱단인 전 남편의 추적을 피해 코니 아일랜드로 찾아온다. 지니는 갱단인 남편의 발걸음을 피해 들어온 캐롤라이나가 탐탁치 않으면서도 잠시동안 머물게 한다. 지니는 코니 아일랜드 부근 해변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미키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내 미키는 캐롤라이나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지니는 캐롤라이나에게 질투를 느끼고 미키에게 집착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녀는 미키를 만나기 위해 카페로 간 캐롤라이나를 쫓는 갱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다. 이내 캐롤라이나는 행방불명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험티와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미키의 분노를 덤덤히 받아내기라도 할 듯이 그녀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다. 그녀는 내일 출근해서 입을 유니폼을 빨아야 한다는 둥 리치 밥을 해줘야한다는 둥 두서 없는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을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코니 아일랜드에서의 삶은 계속된다. 같은 극단 생활을 하며 사랑을 키워온 상낭한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뒤 그 죄책감에 남편을 떠나온 지니는 또 다시 미키를 사랑한다. 미키를 만나는 시간은 학교는 가지 않고 영화를 보러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불만 지르는 리치와 술만 마셨다 하면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험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마음 같으면 미키와 함께 지긋지긋한 코니 아일랜드를 벗어나고 싶지만 리치가 눈에 밟혀 또 다시 촌스럽기 짝이 없는 유니폼을 입고 서빙을 한다. 험티 역시 마찬가지다. 병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갱단과 사랑에 빠져 어린 나이에 결혼해 집을 나가버린 캐롤라이나로 인해 삶의 공백이 생긴 그는 지니를 만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로 다시 돌아온 캐롤라이나를 내칠 수가 없어 다시 받아주게 되고 그녀의 학비를 위해 오늘도 코니 아일랜드에서 회전목마를 돌린다. 


 그렇다면 리치는 왜 매일같이 불을 지르는 것일까. 어쩌면, 불이 돌고 도는 삶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것들을 소거해 이내 재로 만들어 정화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닐까. 우리가 종종 완전히 새로운 삶을 혹은 그 반대, 죽음을 기대하듯이. 

 무의미하고 미련해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모습의 우리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삶의 고리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실수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글쎄 나는 이 선언적인 말에 동의하기도, 하지 않기도 한다. 그저 마지막 장면에 비친 지니의 텅 빈 눈동자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볼 따름이다. 한 번 넘어져 봤기에 이번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듯한 무덤덤한 눈빛일까, 아니면 또 다시 저지른 실수에 대한 회의감 비슷한 감상에 젖은 무상함일까. 답이 무엇이든 간에,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어야만 한다. 삶이 멈출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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