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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Dec 02. 2017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영화 '화양연화'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같은 날 옆집으로 이사를 온 첸과 차우는 잦은 해외출장으로 바쁜 첸의 남편과 귀가가 늦는 차우의 아내 때문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어지러이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 피부를 때릴 듯 쏟아지는 비, 서늘하게 가라앉은 공기를 마시며 국수가게로 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자주 마주치고, 어딘지 모르게 그들의 눈빛은 닮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핸드백과 넥타이가 서로의 배우자의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기대기 시작한다. 그러나 첸과 차우는 ‘우리만 결백하면 된다’라는 생각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사이에서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결국, 차우는 첸을 위해 싱가폴로 떠나고, 몇 년 후 차우는 그를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한 채 애꿎은 수화기만 붙들고 서있다. 그들은 미끄러지고 앙코르 와트 그 어딘가에 그 비밀이 묻혀져있을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 첸과 차우가 서로에게 의지하던 시절의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첸과 차우는 배우자의 사랑을 상실한 존재들이다. 배우자에게 연인이 있다는 심증은 이내 서로의 넥타이와 핸드백을 보는 순간 물증으로 바뀌어버렸고, 그들은 비참해졌다. 그 마음의 균열을 메워보기 위해 그들은 서로의 배우자가 되어 연기도 해보았지만, 그럴수록 더 비참해졌다. 그렇게, 같은 상처를 가진 첸과 차우는 서로의 공허한 눈동자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첸이 아이디어를 주면 차우가 글을 쓰는 식으로, 한 편의 무협소설을 연재해나가면서 아픔을 견뎌낸다.      


 그러나 첸과 차우는 동질감 그 이상의 감정을 부정한다.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자신의 배우자들과는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관계일 뿐, 그 이상의 사랑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은 일종의 도덕적 선민의식이다. 동시에, 배우자들에게서 받은 사랑의 상실의 크기를 알기에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원하고 있었다. 그 견딜 수 없는 괴리감에 차우는 서로를 위해서는 이별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싱가폴로 떠나기 전, 첸에게 미리 이별연습을 하자고 제안한다. ‘나를 사랑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라는 첸의 질문에 차우는 ‘나도 모르게 사랑하고 있다’고 답한다. 

 그들이 함께했던 시절의 아름다움은 사랑에 한없이 서툴렀던 젊은 날에 대한 회한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첫사랑이 오래토록 아련하게 기억되는 이유처럼 말이다. 첸과 차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에 괴로워했고, 결국은 이별로써 그 사랑을 지켜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고독하면서도 애틋했던 사랑에는 흘러가버린 세월의 무상함이 덧대어져 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화양연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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