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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Nov 19. 2017

저물어가는 게 아니라 여물어가는 겁니다.

[브런치 무비패스]영화 '빛나는'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를 해설해주는 일을 하는 미사코. 시력을 잃어가는 포토그래퍼 나카모리. 미사코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원활한 영화 이해를 위해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해설을 들려주지만 나카모리는 그것은 상상의 여백을 남겨두지 않는 일종의 ‘강요’라고 쏘아붙인다. 그 말뜻을 이해하고 싶었던 미사코는 나카모리의 역사를 궁금해 하고, 그가 사진작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사코는 그의 사진집을 보다가 석양 사진을 발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기 시작한다. 반면, 나카모리는 조금이나마 보이던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비참함에 빠지게 되고, 미사코는 그러한 그의 손을 가만히 잡고 걷는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미사코와 나카모리에게는 각각 집요하게 끌어안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노을, 그리고 카메라. 미사코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당신 남편이 없는 줄도 모를 정도의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그렇게 미사코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월의 무상함을 (일본에서는 이러한 심상을 ‘모모노아와레’라고 부른다) 깨달아버렸다. 그는 아버지 지갑에서 노을이 지는 뒷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노을에 대해 생각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불리는 해질 무렵은 어둠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빛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미사코에게는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자 무상함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미사코는 나카모리에게 석양사진을 찍었던 장소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자신과 비슷하게 무언가를 잃어본 상처가 있는 나카모리와 함께 직접 그 장소에 가서 서로의 아픔을 마주하고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곳에 도착해 노을은 보는 순간 미사코는 나카모리에게 키스를 한다.  


 나카모리에게 카메라는 그의 심장이다. 카메라에는 시력을 잃기 전 화양연화와도 같았던 시간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반짝거릴 만큼의 청춘이 있었고 그가 꿈꾸던 삶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력을 잃어갈 때에도 카메라만은 손에서 놓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셔터를 향하는 처절한 그의 손끝에는 마지막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넘어져 카메라를 놓치고, 그것을 지인이 낚아채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카모리는 분노 섞인 절규를 한다. ‘이미 심장은 멎었지만 그래도 카메라는 내 심장이야’라는 그의 대사처럼 카메라는 그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걱정되어 뒤따라온 미사코를 향해 나카모리는 다시 한 번 카메라를 들어 미사코의 얼굴을 찍는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많은 사람들은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해를 볼 때 괜스레 마음이 가라앉아 지평선 뒤로 넘어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반짝거리고 이내 사라질 것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들을 잡아놓고자 사진을 찍어대고, 임종을 지키듯 지는 해를 배웅한다. 삶의 덧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 그러나 그 순간에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되새기게 해준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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