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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Nov 11. 2017

끝나지 않는 애도의 무게란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잡역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리는 그의 형, 조의 사망소식을 듣고 급하게 맨체스터로 돌아간다. 심장병을 앓고 있던 조는 유언에 리를 아들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정해놓고 떠났다. 하지만 리는 몇 년 전 자신의 실수로 인한 화재로 자녀 세 명을 잃은 상처로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기를 꺼려한다. 그럼에도, 리는 형의 장례식을 무사히 마친 뒤에도 맨체스터에 남아있고 싶어 하는 패트릭을 최대한 배려해 성인이 될 때까지 챙겨주기로 한다. 그러나 전 아내 랜디를 만나고 난 뒤 몇 년 전의 맨체스터에서의 비극은 갈수록 짙어져 그를 잠식시켜 버리고 만다. 결국, 리는 지인 조지에게 패트릭의 후견인 자리를 넘겨주고 보스턴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애도, 상실의 상처 안에 머물면서 차츰 그 상처를 인정하고 사랑의 리비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그러나 리는 이 애도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모든 욕망이 소진된 것처럼 보인다. 밝고 유쾌했던 리는 어린 패트릭에게는 재밌는 삼촌이었고,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였다. 하지만, 순간의 실수로 인해 하루아침에 자신의 아늑한 집,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세 명의 아이들을 잃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고,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랜디와 헤어진 뒤 보스턴 원룸으로 이사해 하루하루를 비참함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그 어떤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사랑의 리비도를 이동시키지도 못한다. 감정의 분출이라고는 술집에서 싸움할 때의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환멸뿐이다.      

  그렇게 공허한 상실 속에서 살아가던 그에게 조의 죽음은 또 한 번의 시련이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형마저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남은 가족이라고는 패트릭 한 명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리는 맨체스터에서의 비극을 알면서도 조가 자신을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정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처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리는 패트릭을 보스턴으로 이사하게끔 설득한다. 하지만 패트릭이 맨체스터를 떠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조의 시신을 안치할 장소를 찾지 못해 냉장고에 넣어야한다는 것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는 것을 보고 잠시 동안만 패트릭 곁에 있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를 잠식해오는 비극적인 그 날의 기억과 전 아내 랜디의 눈물을 마주한 뒤 그동안 참아왔던 상실의 무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눈물로 만류하는 패트릭을 뒤로 하고 리는 조지에게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고 보스턴으로 떠나기로 한다.       

  과연 모든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슬픔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도한 그 비극적인 기억은 시간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가만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축적될 뿐이다. 상처를 입은,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부둥켜안고 살아낼 따름이다. 그 끝나지 않는 애도의 무게란, 과연 어느 정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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