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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Nov 06. 2017

금기가 없다면 욕망도 없다

영화 '퍼스널 쇼퍼' 리뷰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키라의 퍼스널 쇼퍼인 모린. 그녀는 생전에 죽은 자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었던 쌍둥이 오빠 루이스의 말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가 살던 집에 찾아간다. 그녀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는 하지만 망령과 교감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모린의 휴대폰에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오고, 그는 모린이 키라의 옷을 입고 싶어 한다는 숨겨진 욕망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키라가 해외로 간 사이에 모린은 그의 옷을 입고, 며칠 후 키라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시간이 지난 뒤 모린은 낯선 곳에서 다시 한번 망령을 만나게 되고 그의 존재를 확인한다. 


 평소에 모린은 키라의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입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처럼 누군가의 옷을 입고 싶다는 열망은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혹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서 키라는 그러한 모린의 욕망이 대상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망령은 그러한 모린의 숨겨진 욕망을 잘 알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린을 자극한다. 결국 모린은 키라가 밀라노로 출장을 간 사이에 충동적으로 키라의 옷들을 꺼내 입는다. 이 행동은 지금껏 참아왔던 욕망의 표출이자 더 나아가서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이다. 기존의 공포영화의 기괴한 망령의 모습과 달리 <퍼스널쇼퍼>에서의 망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망령이 모린의 열등감이나 박탈감, 그리고 다른 삶에 대한 야망 등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망령은 바로 모린 자신이다.     

 특정한 대상 없이도 불현 듯 오는 두려움을 ‘불안’, 특정 대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공포’라고 한다. 모린은 망령을 무서워하는 것이므로 공포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에는 가시적인 물질뿐만 아니라 본인의 자아도 포함된다. 즉,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내재된 욕망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 기피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항상 내면에 존재하는 것으로, 누군가가 발굴해낸다면 언제든지 발현될 수 있다. 그래서 모린은 그 망령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망령의 목소리대로, 아니 자신의 마음 속 목소리대로 하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삶의 모습이 펼쳐질 것임을 알지만 그에 대처할 용기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욕망은 곧 금기이며, 금기시되는 것은 욕망의 대상이다. 이는 기괴한 모습으로의 귀신이나 유령에게서 느끼는 공포심이 아닌, 내 안 심연으로부터 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욕망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가능성이자, 나의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굴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꾼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열망이자 공포로 가득 찬 도전이다. 금기가 없다면 욕망도 없을 것이며, 사람은 정체된 상태로 머물 것이다. 심연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견디는 자만이 삶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퍼스널쇼퍼>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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