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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r 02. 2018

먼 미래의 일을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지만, 그렇다고 결혼하기 좋은 나이가 따로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20대 후반 혹은 30대의 내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가정을 꾸려 가족과 함께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을지, 아니면 여전히 불안하지만 자유로운 채로 혼자 남아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 현재의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기 때문에 딱히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안하자니 먼 훗날의 벌어질 일들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면 머리 속에 짙은 안개가 꽉 들어차있는 기분이다. 이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외로움과 두려움은 나에게만 국한된 감정은 아닌 모양이다.

10년 넘게 카페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수짱과 영업부 소속 지원으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마이짱, 어머니와 병상에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모시며 사는 웹디자이너 사와코상. 이들은 종종 만나 소풍을 가거나 요리를 해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한다. 그러나 언뜻 언뜻 비치는 그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카페 매니저와 일종의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매저가 자신의 동료와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수짱부터, 유부남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일명 '꼰대'들 사이에서 힘겹게 버티다 이내 모든 것을 그만두고 결혼 정보회사에 등록하는 마이짱, 그리고 어릴 적 동창과 우연히 만나 새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상대방으로부터 그 마음이 의심되는 말을 듣고 헤어짐을 결심하는 사와코상까지. 마냥 잊고 살 수만은 없는 각자 삶의 고민들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까지 카페에서 일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라고 했던 수짱은 사장으로부터 점장 이름표를 받게 되고 매니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결혼 정보회사에 등록한 마이짱은 곧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해 아이까지 갖게 되고, 사와코상은 이전처럼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며 단란하게 지낸다. 앞선 장면들과 이러한 장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간극에는 얼마나 많은 결심과 회의가 들어앉아있을까.

지금껏 자신이 일궈냈던 것들을 내려놓고 불룩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수짱과 사진을 찍는 마이짱의 쓸쓸한 눈빛을 보면 그 감정의 골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카페 점장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수짱의 모습에서 결혼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그 순간을 박제해두고 싶었으리라.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누릴 수 있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게 된 지금을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과거와 미래의 경계, 바로 현재에서 마냥 추억에 잠겨있지도 않고 비관하거나 낙관하지도 않는 가장 평온한 지금의 마이짱의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짱이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어'라는 식의 오기 혹은 용기를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가정을 이루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카페 일에 지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마다 먼 미래의 일을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되뇌이고 순간의 행복에 집중한다. 마이짱처럼 결국은 남들이 다 가는 길에 들어섰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실망할 필요도, 수짱처럼 가지 않는 길을 들어섰다고 해서 후회할 필요도 없다. 잠시 잠깐 돌아왔던 길은 잊어두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가에 놓인 풀과 꽃들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면, 그 뿐이다.


영화 제목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단 결혼만이 아닌 모든 이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들에 대한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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