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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Nov 09. 2018

개 같은 인생이라면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베일리 어게인'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혹자는 인생은 아름답다고 하던데,   인생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춥기만  .   많은 이들은 뇌까린다. 이런  같은 인생.


하지만, 여기 견생 4회차를 산 베일리는 말한다. 진정한 '개 같은 인생'이라 함은,


지나간 일에 감상적 후회에 빠지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놓치지 않으며 오롯이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는 삶이다.

 불타는 여름, 차 안에 혼자 남겨져 탈수증세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베일리는 8살 이든의 손에 구조된다.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이든은 베일리와 함께 마당을 뒹굴고 침대에서 같은 꿈을 꾸며 성장한다. 어느 새 고등학생이 된 이든은 놀이공원에서 한나를 만난다. 순간 베일리는 그에게서 처음 나는 땀냄새를 감지한다. 그렇다. 첫사랑이다. 베일리는 작전을 개시한다. 한나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이든과의 인연의 끈을 쥐어준다. 그렇게 셋은 떼어놓지 못할 단짝 친구가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찬란한 순간을 서로의 시간 속에, 기억 속에 아로새긴다.


 하지만 역시, 행복은 통장을 스치는 월급같다. 한순간 우리 곁에 머물렀다가 어느 새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럭비에도 재능있고,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한나와 '댕청'하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베일리까지, 인생에 아쉬울 것이 없어보이는 이든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으니.. 바로, 일을 그만두고 알코올 중독이 된 아빠다. 평소 그의 재능을 질투하던 토드는 귀신같이 그의 흠을 잡아내 얄궃게 시비를 걸고 이든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날 밤, 분노를 삭이지 못한 토드는 이든의 집에 찾아와 불을 낸다. 이를 단번에 눈치챈 베일리가 가족을 깨워 목숨을 건지지만, 안타깝게도, 이든은 엄마와 베일리를 먼저 내보내다가 다리를 크게 다쳐 그토록 좋아하는 럭비를 그만두게 된다.


 그 때부터 이든의 삶에는 슬픔이 찾아온다. 자신을 위로하러 찾아온 한나에게 밝은 미래가 아닌 헤어짐을 약속하고, 베일리에게도 더 이상 럭비공을 던져주지 않는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든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농업학교로 떠나기 위해 차에 올라탄다. 다시금 밝아진 이든의 모습에 신난 베일리는 장난치는 줄 알고 죽기살기로 뒤쫓아가지만 이든은 돌아온다는 약속만 할 뿐이다. 그러나 베일리의 시간은 우리의 그것과는 달라 너무도 빠르게 흘러간다. 베일리는 이든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신부전증을 앓다가 자신을 찾아온 이든의 곁에서 눈을 감는다.

 엥. 다시, 눈이 떠졌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베일리라는 인식표도, 이든도, 심지어는 그것(!)도 없다. 1등 경찰견, '앨리'가 되어있었고, 이별의 상처로 인해 마음이 굳어버린 카를로스만이 곁에 있을 뿐이다. 앨리는 평소처럼 카를로스와 함께 납치사건을 수사하던 중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댐 위에서 용의자를 맞닥뜨리게 된다. 앨리는 물에 빠진 피해자를 구출해내고 다시 카를로스에게 돌아오지만 용의자가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앨리는 망설임 없이 용의자를 공격한다. 동시에 탕! 허공에 울려퍼지는 한 발의 총성. 카를로스를 구하려다 총에 맞은 앨리. 용의자는 체포했지만, 카를로스는 다시 한번 이별을 하게 된다. 앨리는 자신의 생명으로 카를로스의 인생을 온기로 채워놓고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

 이제는 정말 끝인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는 히키코모리 수준으로 홀로 생활하는 마야의 반려견, '티노'로 말이다. 용맹스럽기 그지없던 앨리에서 다리도 짧고 오종종 걷는 꼴이라니. 귀엽다. 마야가 하는 생각을 읽어내고 그녀가 먹는 음식까지 나눠 먹던 티노는 살까지 쪘다. 운동을 해야한다는 수의사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듣게 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공원으로 나선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새옹지마, 알다가도 모르는 것. 남자없이 티노와 같이 살아도 좋겠다던 마야는 같은 수업을 듣는 알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티노는 마야를 집 밖의 세상으로 이끌었고 마야는 그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다. 덕분에 티노는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다가 마야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다.

 또, 또 다시 까만 눈이 떠졌다. 이번엔 운이 좀 안 좋다. 기를 능력도, 책임감도 없으면서 무작정 데려와 마당에 묶어놓고 키우는 사람들 곁에서 이렇다할 이름도 없이 산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아무'개'는 차디찬 길가에 버려져 졸지에 유기견이 되었다. 아무개는 그렇게 방랑하던 중 어디선가 이전 생에서 몸에 각인된 듯한 냄새를 맡고 들판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엔 지난 세월을 이기지 못해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이든이 서있다. 아무개는 한걸음에 달려가 이든에게 안기지만 그는 슬픔에 갇혀 옛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음날 유기견 센터에 맡긴다. 하루나 지났을까. 이든은 자꾸만 눈 언저리에 밟히는 아무개를 다시 데려오고 '버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따듯한 봄날을 보내던 중 이든은 먼지 덮힌 창고 속에서 낡은 럭비공을 물고 온 버디와 눈이 마주친다. 문득, 베일리와 했던 공놀이가 생각나 하늘 높이 공을 던지고 몸을 숙인다. 그 순간, 버디는 이든의 등을 밟고 점프를 해 공을 단숨에 낚아챈다. 그리고 이든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나야, 이든. 베일리, 베일리, 베일리!" 그리고 이든 역시 이야기한다. "베일리, 너구나."


 총 4회차에 걸친 견생을 산 베일리는 각 생애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의 말간 마음은 변함이 없다. 오늘이 마지막인 듯 뜨겁게 삶을 사랑한다. 그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이 피는 삶을, 그런 '개 같은 삶'을 베일리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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