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버 Nov 25. 2018

무기력하고 무감한 전쟁 영화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저니스 엔드' 리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어서 더욱 안타까운, 롤리 소위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인 1918년 3월 18일 프랑스의 어느 최전방 참호. 불과 50m 간격을 두고 독일군과 맞대고 있는 영국군은 부대 교대로 최전방을 지키며 방어전선을 구축해야만 한다. 즉, 필연적으로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고 죽음을 각오해야한다. 막 군사학교를 마쳐 치기어린 롤리 소위는 옛 친구, 스탠호프 대위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지원한다.

피로감과 책임감이 뒤섞인 표정의 스탠호프 대위

 그러나 롤리의 기억 속 생기넘치던 스탠호프는 온데간데 없다. 맨 정신일 때는 삶의 무게만큼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다가 밤이 되면 지독하리만큼 비릿한 전쟁의 비극에 함몰된 알코올 중독 대위만이 있을 뿐이다. 부대의 정신적 지주인 오스본 중위 역시 다정함으로 동료들을 챙기지만, 속으로는 늘 따뜻한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며 다가올 죽음 앞에 초연해지기 위해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있다. 그 외에, 타성에 젖은 표정으로 장교들의 끼니를 챙기는 취사병 메이슨, 입맛은 까칠하지만 그 누구보다 쾌활한 트로터, 산 송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히버트까지. 이 부대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참호만큼 둔탁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마지막을 예감한 오스본 중위

 그렇게 다가올 최후를 기다리던 중 스탠호프 대위는 연막을 쳐서 독일군 인질 한 명을 잡아 독일군과의 전면전 날짜를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작전은 신참 롤리와 고참 오스본 중위, 그리고 병사 10명이 맡는다. 스탠호프 대위는 부대의 기둥인 오스본 중위와 아직 어린 롤리 소위를 잃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전쟁터에서 그 어떤 예외는 없다. 롤리 소위는 처음 맡은 작전에 신이 나 있지만, 오스본은 죽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물품을 대위에게 전달하지만 이내 거절당한다. 작전은 성공하지만, 돌아온 자는 병사 6명과 롤리 소위가 전부다. 스탠호프 대위는 오스본 중위의 개인 물품을 가족에게 전달할 소포를 꾸릴 뿐이다.  


 독일군의 공격이 개시되는 날 아침. 희뿌연 안개가 자욱한 참호 안에는 섬짓할 정도로 적막감만이 감돈다. 마치 아무도,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것처럼. 트로터와 롤리 소위는 괜스레 병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등을 한번 쓸어본다. 스탠호프 대위는 불안증세를 보이는 히버트를 마지막으로 참호로 올려보내고 본인도 도무지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계단위로 올라간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는 '재미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기력하다. 눈물콧물 흘릴만한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국뽕에 취할만한 영웅서사도, 우리가 흔히 '소비하는' 스펙터클한 전쟁 이미지도 구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끝끝내 버텨야만 하는 의무 속 공포, 권태, 분노, 정신착란, 현실도피, 일말의 애국심에 절어있는 개개인의 얼굴들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건 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개 같은 인생이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