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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Dec 03. 2018

여자들의 화려한 스릴러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스테파니는 불미스러운 사고로 남편과 이복 오빠를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별다른 직업 없이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SNS에 쿠킹클래스 비디오를 찍어 올리는 '열성 엄마'로 말이다. 한편, 같은 반 학부모인 에밀리는 유명 의류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작가로 발돋움하려는 남편 숀을 서포트하는 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언행이 비밀스럽고 거침없다.


스테파니가 늘 바쁜 에밀리를 위해 니키(에밀리의 아들)를 자주 돌봐주게 되면서 이들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에밀리는 이상한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스테파니를 타박하고 허락없이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싸늘하게 정색을 하며 심지어는 며칠동안 니키를 맡아달라고 한 뒤 연락이 두절되기까지 한다. 스테파니는 의뭉스러움은 접어두고 숀과 함께 기다려보지만, 에밀리는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호숫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어딘가에 에밀리가 살아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든다. 숀 집으로 이사를 와서 옷장의 옷들을 다 치웠는데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옷장이 다시 채워져 있는가 하면, 니키가 에밀리를 만났다고 하며 서류까지 전달하는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기 때문.


스테파니는 에밀리가 지금 자신과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살아있다는 단서가 될 만한 그녀의 행적의 부스러기를 모으고 또 모으기 시작한다. 그녀는 결국 에밀리에게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것과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으며 방화범 전과를 숨기기 위해 여태껏 신변을 숨긴 채 살았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렇다. 에밀리는 자신의 높은 보험금을 타기 위해 한 판의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쌍둥이 언니를 호숫가에 수장한 뒤 본인의 사고사로 위장하면서 말이다. 숀은 그저 에밀리의 살벌한 놀이에 필요한 '순진한 장난감'일 뿐이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리드미컬하고 스릴있는 장면보다 뇌리에 진하게 자욱을 남긴 장면은 단 하나. 스테파니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여느 때처럼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본인을 촬영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 장면은 지난 날의 이복오빠와의 비밀스러운 사랑, 남편과 오빠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죄책감, 남편의 부재로부터 오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책임감, 에밀리가 가진 부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시기심까지. 폭넓고 밀도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한순간 빛을 발하며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어폰 줄을 단숨에 푸는 듯한 해방감이랄까.

스테파니는 에밀리 손에 놀아나는 숀을 구해냄으로써 남편과 오빠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고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홀로 서기를 하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판에 갇힌 모성애 강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아닌 통찰력과 용기를 지닌 한 여성으로, 한 개인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인상깊다.


에밀리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보험금에 눈이 멀어 친족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인으로 비춰지긴 했지만 그녀 역시 권력과 힘을 가진 이들로부터 벗어나고, 스스로를 지켜내며 남편의 경제력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가정을 건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스릴러 영화를 떠올려보면 주로 아버지로 대변되는 중년 남성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철저히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스릴러 영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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