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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Dec 09. 2018

상처를 대하는 다정한 자세

넷플릭스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북클럽'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종전한 지 1년이 지난, 1946년.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런던의 작가 줄리엣 애슈턴은 영국의 외딴 섬 '건지'의 농부, 도시 애덤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다름 아닌, 찰스 램이 집필한 셰익스피어 선집을 구해달라는 부탁이다. 건지가 5년동안 독일의 점령된 탓에 남아있는 서점이 없을 뿐더러 과거에 줄리엣이 중고로 내놓은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에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어서 어쩌면 그녀가 책을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칠흑 같이 어두운 독일 점령기에 찰스 램 손에서 나온 문장에서 건지 감자껍질파이북클럽 사람들이 한 움큼의 웃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건지 감자껍질파이북클럽이라고? 그게 뭐야? 대담하고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 많은 줄리엣은 책을 구해다주는 대신 조건을 제시한다. 감자껍질파이북클럽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감자껍질파이북클럽의 다정한 회원들

도시, 엘리자베스, 어밀리아, 이솔라, 램지, 일라이(램지의 손자), 킷(엘리자베스의 딸).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은 사실 북클럽회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얼굴보면 살짝 미소를 띠우는 정도의 데면데면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독일군이 전시에 필요한 식량을 얻기 위해 건지의 돼지농장에서 돼지들을 강제로 몰수해가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감자밖에 재배할 수 없었고, 퍽퍽하고 맛없는 감자의 껍질로 파이를 만들어 먹어야했다. 그러나 어밀리아는 몰래 돼지를 숨겨두었다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없이 소중한 돼지구이를 해먹는다. 


돼지구이를 해먹고 돌아오던 어느 날 밤, 독일 경찰에게 발각되고 만다. 현명하고 재치있는 엘리자베스는 엉겁결에 문학회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라고 하고, 노장의 램지 역시 순발력있게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고 이름붙인다. 그 후 독일군은 북클럽을 정식 등록하라는 명을 내리고 결국 그들은 정말로 책을 나눠읽고 문장에 대해 논하고, 그것을 서로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슬프고도 흥미로운 역사다. 

줄리엣은 낭독회, 인터뷰 등 각종 스케줄을 뒤로 한 채 어떤 운명과도 같은 직감에 이끌려 건지로 향한다. 줄리엣은 슬픔과 사랑이 한 데 녹아있는 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런던 타임스에 실기 위해 취재차 향하지만 어쩐지 북클럽 회원들은 입을 삐죽 내밀고 눈을 흘긴다. 줄리엣은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알려야겠다는 작가로서의 사명 비슷한 감정에만 급급했지, 그들의 마음 속 환부까지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탓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북클럽 회원들에게만큼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북클럽의 수장과도 같았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친구이자 어밀리아의 딸을 죽인 독일군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고, 독일군에 붙잡힌 어린 포로를 도와주다가 연행되어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도시는 엘리자베스가 남기고 떠난 어린 딸 킷을 갸륵하게 여겨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다. 일라이 역시 램지 할아버지와 떨어져 본토로 피난을 가야했던 악몽을 기억한다. 남편과 딸, 딸의 친구마저 잃어버린 어밀리아의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이토록 모순적이고 지독한 상황을 영국의 한 조각 역사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알린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의 포화 속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숨이 콱콱 막히는 일이다. 

하지만, 줄리엣 역시 전시 중 부모를 잃었다. 그렇기에 완벽한 타인들의 상처에 진심으로 감응할 수 있었고, 그것을 어루만질 수 있는 언어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가슴 저리게 경험하는 일은 곧 나의 아픔이다. 


줄리엣 역시 건지 마을 사람들이 겪은 모든 상실을 알게 된 후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다시 런던으로 향하고,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한번 깊게 숨을 고르고 밤낮으로 타자기를 두드린다. 책을 출판하지 않겠다는 북클럽 회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만, 그들을 위한 책 한 권을 조용히 전달한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살필 때 위로해주기 위한 말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그 아픔을 더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거나 과장하며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는 순간 그것은 절대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한번의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함부로 말을 건네는 것도, 그렇다고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글로 옮기는 것도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살결을 스치기만 해도 쉽게 아스러지는 것이 상처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상처없는 사람들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줄리엣의 다정한 자세를 눈여겨봐야한다. 줄리엣 역시 함부로 말을 걸고 함부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고통받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앉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결국,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까지 들어앉아 어깨를 다독여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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