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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omin Nov 09. 2017

드로잉 에세이 11

힐끗 보다

오래전 대만 작가 '룽잉타이'의 글을 읽다 문득 썼던 글입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종소리와 함께 건물을 향하여 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같지는 않았지만

제게도 그런 낯선 경험이 있어 읽는 순간 먹먹했었습니다


저의 딸 이야기입니다


제 딸의 수능시험 결과가 예상보다 여유롭지 못하여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재수를 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인가 

시간을 내어 일찌감치 학원에 등록하기로 하였습니다

약속한 날 제차에 태워 학원 등록을 하고 다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이게 다입니다


그러나 

집을 나와 학원을 향하고 다시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멀지 않은 길을 운전해 오는 동안

룸미러를 통해 힐끗 보이는 

제 아이의 넋 나간듯한 표정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은 채

아릿하게 남아있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는가 싶다가

고개를 떨구고

다시 차창을 흐르는 사물에 시선이 고정된 채

고개를 돌리다 다시 떨구고...


항상 밝고 허물없어 세상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았던

제 아이에게 

그러한 색감의 시선이 묻어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문득 거울을 통해 

제 눈과 마주쳤을 때의 초점 없던 아이의 무채색 시선이 

아직도 서늘합니다


이제 불과 열 일고여덟 일 때의 어린아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담담한 절망과 매서운 외로움이

눈빛에 절절했습니다

그 회색의 눈빛에

차라리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렀으면

말로 할 수 있는 위로라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번 생각해 보아도 

그렇지 않았음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 순간이랄까

그 시간만은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외로움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예기치 않게 그 시간을

존중해 준듯하여 혼자 안도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오갔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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