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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omin Dec 08. 2017

진공관 선생

작은 앰프

내 서재에 있는 

아주 오래전 한 후배가 자작해준 진공관 앰프이다

이때까지도 회사 사무실에서는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나름은 진공관과 진공관 앰프에 대해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냈었다

선금을 줘 가며 닦달하고 재촉하여 근 한 달여 만에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내심 이 앰프와 매칭 시킬 수 있는 스피커로는 

오래된 빈티지 스피커 한 조 가 집에 보관되어 있었는 지라 

큰 어려움 없이 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적당한 케이블을 구하고자 용산 엘 다녀온 후로는

무슨 이유인지는 전혀 기억이 없이 유야무야 저 자리에 올려놓은 채 

지금껏 한 번도 전원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필시 그럴듯하고 듬직한 다른 앰프를 보고 돌아왔으리라 


여하튼 크기에 비해 상당한 내공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했던 그 후배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새삼스레 진공관 이야기로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것도 

이 앰프의 역할이 작지 않은데

가끔 생각하기로 어쩌면 이 상태로 저 자리에 곱게 모셔 두는 것이 

앰프 쪽에서나 내 쪽에서나 피차 아쉬울 것 없이 

변함없는 기대감 만으로 추억하며 몇 년 더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보시는 것처럼 왜소한 만듦새이지만

혹여 여하한 스피커 이든 가뿐히 제압한 채 기대 이상의 웅장하고 깊은 소리를

보란 듯이 울려 준다면 더 이상 바랄 바 없을 터이고

그와는 반대의 경우로 

아니 생긴 그대로 스피커를 제압하지도 못한 채

그렁저렁  앓는 소리나 낼 정도이라면 

나의 알량한 애정이 급속도로 식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니 

그런 사달은 애초에 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할 듯싶다


지금의 은근한 기대처럼

언젠가 램프에 은은한 불이 들어오고 

적당한 예열을 거친 후

덩치와는 다르게 오래된 빈티지 앰프를 가뿐히... 까지는 아닐지라도

무리 없이 울려주는 그런 상상

풀 오케스트라는 버겁다 해도 실내악이나 재즈 일지언정

우연히 특정 장르에 특화된 소리를 내게 들려주는 그런 횡재와 같은 

상상을 이루어 준다면 

제게 지나친 부담을 안겨주는 걸까

해준 것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바라는 것일까


행여나 그럴 리도 없으려니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 이대로가 좋을 듯하다

그냥 이런 상상 만으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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