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숨소리마저 뜨거운 여름이다. 반팔 따위의 옷가지가 전부인 천근같은 배낭을 메고 들끓는 돌바닥을 누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할 것 없이 여건만 된다면 배낭을 챙겨 요란할 것도 없이 여행을 다닌다. 어디든 상관없다. 사람이 많은 곳도 그 나름대로 즐겁고, 을씨년스러운 동네는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그러나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나 어떤 일의 시작 전에 매번 찾아가는 곳이 있다.
여름이면 매번 사찰을 찾아 한동안 머문다. 부처도 모르고 사상도 같지 않다. 그러지만 하염없이 들려오는 불경 소리가 좋다. 바람을 가르며 지느러미질을 하는 풍경(風磬)의 물고기 소리가 좋다. 스님이 고요히 몸을 움직일 때 스윽하고 움직이는 장삼의 소리와 그 주름이 좋다.
내가 찾아간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오대산 동쪽 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 잡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보기 드문 작달막한 노란 버스를 탄다. 세월의 흐름을 알리려는 듯 털털털 오대산을 향한다. 들어가는 길 속에서 버스가 선다. 웬 청년이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탄다. 승객들을 향해 산에 들어가는 입장료를 걷는다고 외친다. 사람들은 서로 말없이 성스러운 모금을 하듯 바구니를 채운다. 그중 중고생 정도의 딸아이와 함께 온 아주머니가 고요한 버스를 메운다.
“신자가 부처님께 기도드리러 가는데 입장료가 다 무엇이람.”
“그게 아니라, 여기가 국립 생태 구역이라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 글쎄 그런 것 모른다고 안 했소?”
주목받는 시선에 난처한 것은 그녀의 딸뿐이다. 안절부절못하던 딸이 돈을 내려는 걸 아주머니가 엄하게 말린다.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단호하게 내리깐 눈짓에 청년은 난감한 듯 뒷머리를 긁적인다.
“아이 됐습니다. 기사님 다 됐습니다. 출발하세요.”
소란스러운 풍파가 지나고 버스는 다시 움직인다. 올라가는 길목도 모두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여 공기가 시원하다. 솨아솨아 소리까지 개운하다.
버스에서 내려 정리되지 않은 자갈길을 오독오독 밟으며 고개를 든다. 길 너머에 금강연이 보인다. 손끝이 닿으면 사라질 듯 맑다. 감히 손댈 수 없는 물 안에서 꼬리 치는 열목어의 꼴이 퍽 새침하다. 바위틈으로 쏟아지는 계곡물은 눈까지 시리게 한다.
금강연을 지나는 돌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월정사의 입구가 보인다. 사방이 나무로 싸여있다. 나뭇잎이 뙤약볕을 걸러준다.
내가 묵는 방 앞마당에는 절구같이 생긴 돌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둔다. 표주박이 떠다닌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시원하다. 소란스럽지 않아 하물며 새마저 속삭인다. 간간이 들려오는 불경 외는 소리와 그에 얼기설기 섞여 들리는 풍경소리면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이름난 신지식인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존경스러운 이유는 잘나서도 아니요, 후대에까지 이름을 알려서도 아니다. 어떻게 이곳에서 진리를 찾고 학문을 탐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신선처럼 누워 이 곳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동동주든 막걸리든 상관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지나가시는 스님의 온화한 눈인사에 불경을 저지른 듯 창피해진다. 괜히 떠다니는 표주박 엉덩이를 툭하고 쳐본다.
절 입구 쪽으로 돌아나가면 오른쪽에 전나무 숲이 길을 따라 죽 늘어선 모양이다. 진한 초록의 나뭇잎이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솟아있다. 절에 머무는 이, 방문한 이들로 북적이지만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옆방의 아주머니와 아들이 말없이 길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대화도 없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나란히 걷는다. 참으로 다정스럽다.
겨울의 전나무 숲 또한 아주 절경이라고 한다. 땅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 닿을 듯한 나뭇가지에 눈이 내려앉는다. 발목까지 눈이 쌓인다. 덮인 눈 때문에 주변은 더욱 고요하다. 숨죽이고 있는 그 거리를 나 혼자 뽀득뽀득 걷는다. 이곳에 혼자 있는 걸 느끼게 되면 이곳이 어디인지 잊게 된다. 새침한 열목어도 잠을 자는 그 계절인 것이다.
산사의 저녁은 바깥의 세상보다 일찍 찾아온다. 이른 저녁 공양을 먹고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댕 하고 종이 떨린다. 봉은 든 스님의 손이 떨린다. 귓바퀴가 진동을 하고 산사가 울린다. 법고가 울리고 마음이 일렁인다. 너른 소매가 펼쳐진 채 북을 친다. 영원 같은 순간, 세상은 온통 북소리로 둥둥거린다. 북 옆의 우물에 떠있는 표주박이 물살에 움직인다.
신선놀음을 한 탓에 피곤하지 않다. 잠이 오지 않아 문을 열고 마루에 앉는다. 시간 모르고 내려오는 물을 받아내는 우물이 보인다. 표주박이 가장자리에서 둥둥거린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마당 옆 돌계단을 비추는 가로등이 보이기에 그곳에 자리 잡는다. 생각나는 것 없이 생각이 든다. 뜻 없는 무의식의 내용을 적어댄다. 이것이 일기인지 내 기분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늦은 새벽 아래층 불당에선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살랑살랑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별빛이 내리는 모양으로 잘랑 잘랑 효과음을 낸다.
바람 끝에 물기가 있는 것이 내일 비가 올 것 같다. 계단을 오르던 여 스님이 왜 이러고 있느냐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기에 그냥 웃는다. 나는 스님에게 물었다.
“내일 비가 오면 어쩌죠?”
그러자 스님이 곱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 일어나실 수는 있을까요?”
다음날 아침엔 비가 추적추적 내린 모양이다. 사람들은 흙길을 살금살금 걸어 다닌다. 그리고 나는 점심이 다 돼서야 일어났다. 다행히도 비는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