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Dec 10. 2021

구독자 32명

그 경쾌함이 좋다 

최근에 결산 리포트를 받았다. 브런치를 2년간 했고, 글은 약 80개, 구독자는 32명이었다. 물리적으로 보면 2년이나 글을 쓴 것에 비해 구독자가 아주 적다. 또 그중 반은 잘 읽지도 않는 지인일 것이다. 나는 sns 게시글이 3000개가 넘는 헤비 업로더다. 뭐든 꾸준히, 열심히 하는 편이라 별 소소한 일상들, 아이디어들, 내가 성취한 것들, 이야기들을 깨작깨작 잘 남겨놓는다.


평소에도 기록을 좋아하고 인스타그램에 너무나 소소한 것까지 자세히 기록해놓기에, 계정은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올리고는 싶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내비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구독자 32명의 경쾌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 글을 써 공유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는 사람만 알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 그 마음의 어디에선가 주저앉아,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누군가 보았으면 하면서도, 또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은 많은 게 그렇다. 가끔 내 글이 메인에 걸려 조회수가 높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내심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또 구독자가 많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 내심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평소와 비슷한 10명 언저리의 조회수의 일상에서 어쩌다 한 명 날 구독하면 또 기분이 좋다. 


그래서 10명 언저리의 브런치 조회수가 좋다. 내심 너무 높아지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저 글을 쓴다는 것은 소소하고 담백하게, 평온한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 하얀 페인트에 조색제 한 두 방울 섞어 바른 따뜻한 미색의 벽처럼, 그저 그랬으면 한다. 하지만 난 그 미색을 절대 내부에만 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한 두 명 지나가다, 미색이 칠해진 외벽을 보고 "아! 참 따뜻한 색이네~"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갈 길을 갔으면 한다.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광장에 나만의 내밀한 생각들을 채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스릴 있고 정감 가는 일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꾸준히 한다는 뿌듯함으로 조금 더 속마음을 맑게 게워내는 지면이 찬다. 그럼에도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지나가다 볼 수 있도록 태그는 또 열심히 한다. 아주 낮은 가능성에서 마주치는 우연이 어쩌면 필연이라는 기대가 아닐까.


글을 쓰다 보면 오히려 생각들이 정리되고 투명하게 비치곤 한다. 내겐 이 과정이 꽤나 안온한 치유가 된다. 별 일 아닌 일상도 깊게 생각하게 되는 힘. 내가 꺼낼 수 있는 어휘로 나만의 시선을 조금 얹어보는 일. 나는 내 글이 제일 재밌어서 자주 다시 읽어보곤 하는데, 언젠가 이 글들이 모여 에세이집으로 출간되어 아주 쪽박을 차고, 또 어쩌다 스친 사람들만 음미해보기를 바란다.


어제 간 송년음악회에서 가수 김수희 씨가 18살부터 지금까지 음악을 했다고 했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마치 mr을 틀어놓은 듯 청량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매일 발성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라는 한 길을 걷고, 수없이 선 지금도, 무대가 감동적이라 눈물을 글썽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사실 처음에는 김수희 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공연을 봤지만 보다 보니 내가 다 부럽고, 감동적을 받아 눈물이 났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소명의 길은 무엇일까. 아직 찾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내겐 그게 글이면 좋겠다.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삶에 도움 되는 지식들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내 일상과 내 생각들을 조금 정제해서 올려놓는 밥상이지만 누군가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을 수도 있을 테니. 쓰다 보면 또 읽다 보면 어떤 다른 방식의 쓰기가 갈급해질지 모른다. 


내 글은 어디서부터 시작이었을까.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조합해보자면 아빠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자고 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글도 읽지 못하던 시절 새벽에 혼자 거실에 앉아 책을 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집에 가서 바로 독서교육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고등학생 때도 새벽부터 일어나 책을 읽고 있었다는 친척들의 증언으로는, 책은 아주 아가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논술학원이 유행이었다. 한우리에 꽤나 오래 다녔고, 원고지에 글을 쓰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영화 보는 시간에도 책을 읽겠다며 떼썼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토요일마다 도서관에 데려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어두었다. 미대 준비를 했었고, 떨어지고 어쩌다 국어교육과에 왔다. 대학생 때도 책은 꾸준히 읽었었다. 그런데 글을 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글은 20대 중반부터 써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다가 책 읽은 잔상을 한 두줄 기록하다가, 점점 생각이 붙어 길게 쓰기 시작하면서 브런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엔 열심히 쓰지도 않다가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 10회 차를 듣고, 매주 숙제를 하다 '브런치에 올려봐?'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10번의 글쓰기가 꽤나 습관을 붙였는지 지금은 시기를 타긴 하지만 나름 자주 와서 쓰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 글 쓰기는 오래되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다른 세계였다. 글감을 찾는 것은 아직도 힘들지만, 확실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평소 기록을 좋아하는데, 약간 일맥상통하기도 하고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일단 재밌다. 고민이 풀리거나 치유되는 경험도 있다. 고로 난 이 상큼한 취미와 아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구독자 32명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글이 쌓일 것이고, 태그도 쌓일 것이고, 또 어쩌면 좋은 기회가 와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지도 모른다. 갈수록 아예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쓰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만 느낄 수 있는 안온함을 최대한 많이 누리려 한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내 노력과 뜻대로만 할 수 있는 것들이 갈수록 준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구독자 32명이 한참을 나와 함께 가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실 일이 하고 싶어서 스트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