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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Dec 11. 2021

일이 좋아서 직장인을 못해요

내가 퇴사한 이유 

퇴사한 지 벌써 7개월이 흘렀다. 3년 만에 처음 쉬는 기간을 맞이했지만 이전 계약과 사회적 관계들이 남아있어 6개월간은 또 이것저것 바빴고, 어제부로 대학 기말고사도 끝났다. 오늘 하는 수업까지 끝나면, 올해의 의무적인 일은 전부 끝나는 것이 된다. 이제는 매달 들어오는 안정적인 수입이 없기에 슬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물리적인 돈보다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급하다. 


내 죽일 놈의 호기심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난 평생 이 호기심에 져왔고, 분명히 앞으로도 이길 승산이 없다. 무언가 호기심이 인다면, 이 감정이 일렁이는 순간 빠져나올 수가 없다. 세상은 너무 넓고 지금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 무언가 새롭고 재밌어 보이는 것들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야 좁은 내 눈에 궁금한 것이 걸린다면 난 체력과 시간과 현실과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달려 나가게 된다. 


이제 다시 출퇴근이 있는 직장인을 할 생각은 없다. 프리랜서처럼 출퇴근이 없고, 직장인 형태의 계약은 가슴 뛰는 일이라면 할 것도 같다. 내가 퇴사한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그저 일이 좋아서다. 일이 좋아서 잘하고 싶고, 자꾸 제안하고 싶고, 새로운 것들이 궁금하고,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고 싶다. 하지만 직장은 순서가 우선되는 곳이다. 무리를 지어달리는 곳에서 나 혼자 달릴 수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야만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을 못한다. 보통은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상사가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퇴근 후에도 항상 공부하고, 이것저것 해보고 잔뜩 들고 와, 것 필하면 '제가 해봤는데요 - 00는 어떨까요?'로 시작하는 말을 꺼낸다. 이런 동료를 원하는 직장인들은 별로 없다. 나는 호기심이 자꾸자꾸 샘솟아서 많은 게 궁금하고, 많은 걸 시도해보고 싶다. 요약하자면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귀찮은 직원인 것이다.


직장을 다니고, 퇴근 후에는 관련된 일들로 건 바이 건을 맺어서 이 에너지를 풀곤 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로맨틱 하지만, 나처럼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또 풀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또 아니다. 물리적 성공과 체력적 한계와 관련 없이, 그저 이 달려 나가는 호기심을 이렇게나마 잠재워야만 또 내일 일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몰입할 것과, 그냥 넘어갈 것의 강약 조절을 잘해야 한다. 관습적인 부분도 있고, 잘 해내려면 그만큼 두터운 보고체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뭐 하나를 하더라도 이유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이름이 적인 것은 뭐든지 잘 해내고 싶다.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질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나랑 일하는 사람들은 자꾸 피곤하고 지쳐간다. 물론 스스로도그렇다.


9-6라는 시간이 아까웠다. 내겐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재화인데, 몰입해서 일을 금방 해내는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늘 남은 시간들이 아까워 어쩔 줄 몰랐다. 직장에서도 새로운 자극들은 꽤 많다. 일 하나를 하더라도 새로운 기획과 퀄리티로 진행하고, 능력에 따라 월급을 받고 싶었지만 새로움에 대한 물질적 가치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효율성과 새로움에 대한 효과는 사실 바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직장생활이 성에 차지 않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하게 되었다. 연구직이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어떤 조직 속에서라면 늘 제한이 있을 것 같다. 미술 수업을 하나 맡아하더라도, 커리큘럼을 다르게 짰다. 첫 수강생들은 늘 어리둥절한 채로 집에 가곤 했다. 처음 해보는 모든 형태들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난 이게 재밌는데, 아닌 사람도 꽤나 있나 보다.


또 일이 하고 싶고, 무언가 심심한 시기가 왔다. 다들 현실을 자각하라는데, 차선 말고 최선을 선택하고 싶어서 조금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어떤 일이라고 뾰족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이 하고 싶다. 살아가는데 물론 돈도 꼭 필요한 자원이지만, 일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누고 내 삶에 반추해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 삶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눈뜨는 새벽부터, 잠들기 전 저녁까지 황량한 시간들이 꽤나 길게 빈다. 물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미싱도 배우고, 운동도 가고 나름 바쁘게 지내고는 있지만 하나의 방향성으로 빨리 나아가고 싶어 애가 탄다.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즐거우니까.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부 변형해 차용하는 것도 새삼스레 재밌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가 또 좋아하는 일을 하루빨리 하고 싶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묵직한 기시감이 날 앞으로 떠밀고는 한다. 기다리다 보면, 또 적극적으로 찾다 보면 이번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찾아 좋은 기회와 만나게 되겠지. 내 성향에 딱 맞는, 너무나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려진다.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너무나 좋다. 난 그런 일을 선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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