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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Dec 07. 2021

사실 일이 하고 싶어서 스트레스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올해 5월에 퇴사하고 벌써 12월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꽤나 바빴고,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도 실컷 만났다. 날이 많이 추워지고, 안부를 전할 사람들도 다 만나고, 가을의 중요한 행사도 다 끝나고 나서야 일상이 간간해졌다. 시간이 더 생기고 나서야 마음속 한 구석의 불편한 지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조그마하게 커진 그 감정은 바로 일이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들은 일이 하기 싫어 죽겠다는데, 물론 나도 그런 마음으로 퇴사했기에 하면서도 배부른 고민이라 느낀다. 반년 간의 수많은 성취들은 그때그때 즐거웠지만, 힘껏 함께 몰려와 바위에 부딪히면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또 간간히 부서지기도 했다. 일이 하기 싫어서 스트레스 인지 알았는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일을 너무 하고 싶은 시기가 왔다. 스케일 큰 일을, 내가 이리저리 휘두르며 아주 잘하고 싶은 시기가.


한적한 도서관을 천천히 거닐며 마음에 드는 책을 10권 골라 사진을 찍으니, 9권이 일과 성취, 부에 관련된 책들이었다. 이주에 한 번씩 도서반납일이 오면 나는 내 깊숙한 무의식과 명확히 대면한다. 어떤 주는 어려운 인문도서가 끌리고 어떤 주는 여행도서가 끌리고, 어떤 주는 심리학이나 관계에 대한 책들이 끌린다. 이번에도 애써 모르쇠 하던 이 불편함을 정확하게 대면하고 말았다.


그냥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드디어 심적 준비도 되었고 뭐가 되었든 시작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게 함정이다. 마치 수영 스타터에 폼 잡고 섰는데, 마음에 드는 호각소리가 도무지 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뒤에서 생활비와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이 나를 밀어트리려 하지만, 나는 굳건히 스타터에 양발 딱 붙이고 어쨌든 마음에 드는 호각소리를 굳이 기다려 볼 요량이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하지 않으니,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관련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해외는 어떤 트렌드가 있나도 좀 찾아보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열심히 배워야지. 무엇보다 돈이고 뭐고 스트레스 안 받고 뭐든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이다.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쓰고 하고. 먼저 사명을 찾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모두 적당한 때에 내게 올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가치와 감정으로 범벅된 이 사회에서, 나만의 빛나는 목표를 딱 찍고 흔들림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기는 쉽지 않다. 춥고 드넓은 이 밤하늘 속에 내 작은 별은 어디서 빛나고 있을까. 솔직히 여기서 뭘 어떻게 더 열심히 살고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괜히 시간 탓을 하곤 한다. 내가 너무 째끔 살아서 그래. 계속 살다 보면, 어느 별이 순간 반짝 빛나면서 눈에 확 들어올 때가 있을 거라고. 


남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힘없는 호각이라도 어? 하며 내 맘에 쏙 드는 호각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오늘도 적극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아주 작은 사인이라도, 아주 작은 기회라도 내가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성큼성큼 끌고 갈 테니, 날 간 보는 어떤 영감이라도 떠올랐으면 한다. 사실은 하지 않고 있는 것도 답답해서, 어느 단단한 바닥이든 콱 넘어져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넘어져서 또 보이는 것이 있겠지.


어쨌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내 마음이라서, 미동 없는 마음을 자꾸 살펴보고 있다. 내 삶의 시간은 너무나 빨라서, 지금은 되려 재촉하지 않으려 애쓸 때다. 내년에는 부디, 시간을 펑펑 쓰고 계획 없이 살기를. 소명이 흘러들어올 틈을 만들고, 온화하게 때를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지금은 계획 없이 기다리는 연습을 할 때. 물리적 시간이 아닌, 내 시간에 맞춰 사는 것을 배울 때다. 모든 것은 아주 적당히, 잘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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