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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Dec 20. 2021

운 좋게 집 구하기

아주 천천히 하는 결혼 준비 

아주 천천히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본래 성격대로라면, 진작에도 여러 번 기획서를 쓰고도 또 갈아치웠을 판인데 왜 이렇게 결혼 준비에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걸까. 천성이 느긋한 그와 하는 일은 다 이런 흐름을 탄다. 순간순간을 즐기고, 별 걱정 없이 여유롭게 흐름에 몸을 맡기며. 돌아보면 그와의 인연은 늘 신기할 뿐이다. 만남부터 어처구니없을만치 신기하고, 돌이켜보면 매번 운이 좋다.


약 세 달 반 전인 지금, 웨딩에 딱히 미적 욕심 없는 그와 나는 아직 식장 예약만 마친 상태이다. 우리 집안 장녀의 첫 결혼인만큼 그저 무난하게, 클래식하게만 하고 싶다. 친구들은 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네가 큰 도시에 살지 않는 것도, 결혼과 육아를 원하는 것도, 식에 별 미련이 없는 것도 너무너무 신기해.' 삼주 정도 뒤에는 웨딩 사진을 찍으러 갈 예정이다. 결혼식에 관한 것들은 그동안 딱히가 아니라 사실 아예 한 게 없다. 


그래도 집에 관해서는 진도가 나갔다. 오늘 아주 운 좋은 아파트 계약을 하고 왔다. 작년에 이직하면서, 어쩌다 소득이 아주 작아졌다. 이직한 회사가 말을 바꾸면서, 이것저것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 보니 덕분에 아주 낮은 금리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내 1년 소득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다달이 이자를 몇십만 원이나 더 낼 뻔했다. 가끔 정말 최악이지만, 지나고 보면 도움이 되는 일들이 있다.


올해는 일을 오래 쉬어서 내년에 책정되는 소득은 아주 낮아질 텐데, 덕분에 내년에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있다면 제도적 지원에 있어서 매우 유리할 것 같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소득이 낮고 모은 돈이 많은 게 최고라 느꼈는데, 소득이 높고 모은 돈이 없으면 정말 불리하겠다 싶기도 했다. 안식년을 가질 생각이 있다면 집을 구하기 전 전략적으로 일을 쉬어도 좋겠다 싶지만, 일과 돈과 결혼시기를 함께 계획하기는 꽤나 여러운 일이다.


물론 뛰어나게 능력이 좋거나 양가 부모님이 많이 보태주신다면 금리를 고민할 일도 없겠지. 그냥 현금 주고 사거나 전략적으로 대출을 하면 된다. 결혼할 때가 되니 부모님들의 경제력에 따라 선택권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 난 건강하게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한다. 누가 결혼하라고 강제로 몰아넣은 것도 아니고, 개인의 선택으로 하는 일인데 이만큼 키워줬으면 알아서 벌어서 가는 게 맞지.


물론 집값이 너무 과하게 비싼 것은 당연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다. 적어도 일반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지. 만약 살다가 돈을 많이 벌 기회가 있더라도 이왕이면 부동산 업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 먹고살기 힘들다는데, 굳이 딴 사람들 먹고살기 힘든 판에 숟가락 얹고 싶지 않다. 100% 대출이 나오는 나라도 있는데, 또 서민들은 감히 집 구매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나라들도 있고.. 복잡하다.


어쨌든, 마침 우리가 이사를 가려 알아보던 시기에 입주하는 새 아파트가 있었는데 늘 그렇듯 새 아파트의 입주시기는 굉장히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을 잘 타서 새 아파트를 시세보다 꽤나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잘 탄게 아니고, 공인중개사분이 잘 탄 거지만. 수영장에서 친한 언니가 알고 보니 공인중개사였고, 꽤나 능력이 있었던 분이라 급급매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 층수가 거의 꼭대기층이었기에, 집도 보지 않고 선계약금을 넘겼다. 물론 관련 서류는 잘 확인해주셨고  우리는 이전에 그 아파트의 더 작은 평수를 직접 가서 봤던 적이 있다. 어차피 새 아파트라 내부를 안다면 뷰만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집을 보고 계약서를 쓰고 확정일자를 받아왔다. 뷰는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꼭대기 아래층이라 하늘도 꽤나 보이고, 이제 지어진 아파트라 당연히 나무랄 게 없었다. 


수영을 할 줄 몰라 떠다닌다는 해파리처럼, 세속에 욕심 없는 그가 눈에 불을 켜고 유튜브를 찾아봤다. 공인중개사 언니와 그가 너무 든든해서, 나는 별 신경도 안 쓰였다. 이렇게 무언가에 긴장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큰 계약은 둘 다 처음이었는데, 꽤나 즐겁고 든든했다. 무엇보다 서재와 작업실로 각각 방 하나씩을 내게 주겠다는 그의 말이 제일 좋았다. 넌 정말 멋진 해파리야.


최근에 먼저 집을 정하게 된 친구가 내게 사진을 보여주며 새 아파트를 자랑했는데, 나는 그때 그와 집으로 진도가 안 나간 시점이라 꽤나 부럽고, 우리가 걱정됐다. 그래서 이사 가는 집에 대해서는 지인들에게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는 괜한 박탈감을 느낄 수 도 있고, 부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집들이나, 초대는 하겠지만 그전에 어쩐다 저쩐다 먼저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사실 뭐 과정도 그저 운이 좋았다.


내가 이전에 가고 싶어 한 아파트는 구축 아파트였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새 아파트로 오게 되었다. 막상 이사가려 진행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이것저것 맞아서 그저 운이 좋게 그렇게 됐다. 그러니 이 글을 클릭한 당신도 충분히 운 좋게, 원하는 집에 갈 수 있다. 그러니까 남 부러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꼼꼼히 혹은 대담하게 기회를 찾아보시길. 부디 나보다 더 좋은, 당신에게 딱 맞는, 완벽한 집에 입주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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