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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Mar 28. 2020

28살의 시선으로 사랑을 고찰하다

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보고 떠오른 박약독백


 봄이 왔다. 봄 꽃에 대한 취재를 주말 내에 가야 하는데 꽃은 예쁘게 피었으나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 꽃은 햇살을 맞을 때 쨍하니 제일 예쁜데, 하늘이 흐리니 내일로 미뤄본다. 코로나 때문에 약속이 거의 없는 심심한 주말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엔 역시 웹툰 몰아보기가 최고다. 29살 여성 3명의 이야기가 담긴 '아홉수 우리들'을 읽었다. 29살이면, 나랑 딱 한 살 차이가 난다. 많은 부분이 현실적으로, 공감된다고 느꼈지만 특히나 봉우리의 이별 장면은 마음이 절절했다. 이유는 유난하지 않아서.


 오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참으로 형태와 깊이가 다양한 게 사랑이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취준생을 지나 지금까지. 갈수록 사랑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이젠 연애에는 설렘보다 삶이란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굵직한 연애부터 짤막한 연애까지, 휴지는 별로 없었다. 돌이켜보면 굵직한 연애보다 짧게 떠난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모든 면을 읽지 못한 관계에는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막상 다 까뒤집어보면 별게 아닌 걸 알면서도.


 한 번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다이어트하던 시절도 있었고, 친구들과 모이면 남자 이야기만 하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유난한 '얼빠'였고, '취향 소나무'여서 얼굴 말고 나머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과분한 사랑을 받기도 했었고 사랑을 주기도 했었고 차이기도 했었고 차기도 했었고. 알고 보니 세컨드였던 경험도 있었고, 참 다사다난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연애도 결국의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였다. 미디어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어릴 때부터 환상을 주입하는지. 아쉽게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산다. 바쁘게 연애를 해서 좋았던 것들을 사람을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넓고 얕은 관계에서 배우기 힘들었던 1:1의 진솔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사람은 참 입체적이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 이성 한 트럭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도 알았다.  1:1의 뾰족한 관계에서는 양보다 질이 우선이라는 것도 금방 배우게 되었다.


  사랑을 하면, 그냥 사랑을 하는 박약일 뿐이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되었다. 날 구제할 수 있는 연애는 없으며, 스스로의 심리가 단단하게 구축되어야 더 질 높은 기회가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관계는 감정적이고 그 감정들의 기저는 로맨틱이나 분위기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비밀리에 감춰진 구체적인 개인의 성향에서 온다는 것도.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개인이 설정하는 기준은 본연의 기준에서 크게 가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이 도시로 오기 전,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고 이성적으로도 스쳐 지나갔다. 한눈에 매력적인 사람은 누구나 그 매력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상한 관계가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꼬아버리는지도 목격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환경에서 어떤 시그널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이제 그러한 포인트들을 의도적으로 뭉개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관계에서의 강약 조절은 삶의 많은 부분들을 건강하게 만든다.


 사랑은 넓고 마치 세상의 전부일 것 같은,  이성에 대한 사랑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사랑에 대한 핀 포인트들은 다들 비슷하다. 사랑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첫사랑을 무덤까지 가져가는 사랑이 참 멋있어 보였는데, 이제는 그런 사랑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을 깊숙이 알게 된다는 건 더 넓은 세계를 알게 된다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그러한 기회가 활발하게 주어지는 시기는 몰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겐 아직 그러한 시기가 남아 있으며, 누군가를 선택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러한 기회비용을 소진하는 값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물론 나는 이러한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사회가 더욱 건강하다고 생각된다.


 저 웹툰을 보기 전에, 나는 내가 이룩한 것들이 모두 내가 잘나서라고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내가 글을 잘 써서. 취업이 잘 되는 것도 내가 잘나서. 친구가 많은 것도 내가 성격이 좋아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해서 구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 투자 전혀 없이 발전하는 것들은 없으니까. 나는 원래 내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고, 사람들은 그러한 내 모습에 매력을 느꼈으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나를 안정적으로 지지해주기 때문에 또 스스럼없이 도전하고, 그중 일부가 성공하고, 그러한 과정들은 또 매력적으로 보여 많은 사람들을 꼬는 선순환을 탔다.


 그런데 봉우리의 이별을 보고, 만약 지금 내 곁의 사랑과 헤어진다면?이라는 가정이 들었다. 단단해 보이는 내 미래에는, 잘난 맛으로 사는 현재 마음에는 이 사람의 조력이 컸다. 특히나 심적인 조력이 컸다. 내가 이 사람과 헤어진다면 감정뿐만 아니라 계획한 미래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지금 받는 사랑은 언덕을 구르는 눈송이처럼 손을 대지 않아도 더 크게 확장되고 있지만, 그 원심력에 있는 눈송이는 내 곁의 사람과 만든 것이니.  오롯이 혼자 구축한 게 아닌 것들은 결국 리스크를 안기 마련이다. 오프라인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상황이 두렵다.


 태어나 보고들은 수많은 실전 연애와 사랑에 대한 데이터들에 따르면, 감정은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한다. 원래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 연애판이고, 우린 그래서 연애를 더 재밌다고 느끼며 중요하고 희귀한 가치를 부여한다. 연애가 흔들릴까 봐 두렵다면, 상대에게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헤어져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상황을 보강해야 한다. 사람과 감정에게 하는 투자는 결코 그만큼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만일 이 사랑이 끝나더라도 내가 잘 털고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연애가 세상의 전부였던 20대 초반에도 나는 몇 달을 힘들어 하긴 했지만 결국 딛고 일어섰고, 그 어릴 적의 나라는 땅도 딛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단단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사람도 지금은 수시로 떠오르지는 않으니. 다만 갈수록 현실과 사랑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 한 사람과의 단절이 정말 사랑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그렇듯 잘 해낼 거다.


 사랑은 결국 뭘까. 20대 후반으로 가면서 생각보다 사랑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대학생 때는 어느 정도 규정되어있는 사랑만 접했고, 나는 일반적으로 이성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그 틀에 들어가지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화려한 외모도 아니었고, 여성스럽지도 않았고, 인기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사귀는 사람들은 모두 준수했다. 받는 인기와 만나는 사람의 퀄리티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랑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은 그 틀을 깨 부수고, 그냥 내 삶을 산다.


 세월에 따라 관점이 많이 바뀌겠지만, 28살 박약의 시선에서 사랑은 생각보다 별게 아니다. 그냥 내 인생 살면서 하면 좋은 거고 아님 마는 거다. 어차피 세상에 딱 맞는 사람은 없고, 수많은 갈등과 행복이 생길 것이며 갈수록 그런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이왕이면 그 모든 리스크와 기회비용을 투자해도 좋을 만큼 배울 것이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배울 것은 내가 노력하기도 싫거니와 아무리 노력해서 가질 수 없는 분야의 것이면 더 좋고. 잘 쓰면 본인의 삶이 넓어지고 못쓰면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는 장치다. 꼭 애절할 필요도 없고, 가벼워도 되고, 그냥 본인 스타일에 따라서 딱 그 정도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적극적으로 연애하고 절절히 사랑했던 과거가 보람차다. 그럴 시간이 있었을 때, 열렬히 연애했고 사람을 사랑했고 환상에 빠졌었다. 키스에 징글벨인가 뭔가는 울려본 적 없지만, 타인의 모든 면이 완벽해 보이고 자랑스러웠었다. 운명과 천생연분을 꿈꿨었고, 함께 하는 미래를 분홍빛으로 그렸었다. 카톡한두개에 신경이 곤두섰고 연애에 관련된 도서들을 들고 다니면서 읽었었다. 그의 이성친구들의 sns를 들락날락했고 지금은 시도조차 안 했을 가난한 연애가 참으로 로맨틱했다. 고등학교 때 막일을 뛰어서 샀다는 순금 2돈짜리 커플링이 어쩌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 지금이라면 120만 원이 없어 막일로, 그것도 커플링을 산다고 급하게 버는 남자.. 아마 마주칠 일도 없지 않을까.


 흔한 드라마처럼 나를 영원히 강렬하게 사랑하며, 곧 죽어도 못 잊는 순수한 남자가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난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예쁘지도 않고 영원한 사랑을 믿지도 않으며 결론적으로 그런 남자가 필요도 없다. 그런 남자는 비슷한 여자를 만나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게 아무리 봐도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고 건강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가끔 첫사랑을 궁금하듯, 그렇게 날 간간히 떠올릴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믿는다. n 년을 사귀었는데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짧게 사귀었지만 완벽했던 기억만 남은 사람도 있다. 사랑은 얄궂게도 완벽한 1:1이 없어서, 그 사람들도 나를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가능하다면  범주 내의 많은 사람들 중 아주 평범했고 잘 기억나지 않는 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살면서 1:1의 관계를 완벽히 하는 것보다는 1:다수의 얕은 관계를 잘 구축하고 활성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열렬한 애인 사이는 깨져버리면 그만이지만 친구들은 남는다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해 주변인에게 더 잘하려 한다. 1:다수의 관계를 건강하게 맺을 수 있다면 1:1은 어렵지 않다. 의외로 1:1의 관계에서 1:다수로 관계를 확장하기는 너무 어렵다.


사랑, 열심히보다 솔직하게 하려 한다. 느끼는 것들을 모두 표현하고, 좋은 경험은 함께하고 싶다. 나는 끝까지 이기적이라,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기반으로 결국은 내가 성장하길 바란다. 또한 그러한 과정들이 모두 우리의 성장과 건강함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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