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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Jan 03. 2022

정리와 나눔의 재미

당근 마켓으로 나눔 하기 

이삿날이 가까워지면서 짐을 싸느라 정신없다. 혼자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짐은 놀랄 만큼 번식했다. 아주 조금씩 싸고 있는데, 남자 친구의 짐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공동의 짐까지 늘어난 상태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버려야 할지도 혼란스러운데, 남자 친구는 자꾸만 다 버리라 야단이다. 별 가구도 없이 정말 자취 가구로만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오래 살았지, 싶다.




일단 제일 많은 작업실 짐은 미얀마 학용품 기부로 1차적으로 기부했고, 지금은 거의 수업에 쓸 수 있는 정도의 물품들과 약간의 드로잉북만 남았다. 한 수업에 열몇 명씩 듣기 때문에, 그래도 부피를 꽤나 차지하는 정도다. 드로잉북은 지인들이 놀러 오면 한두 개씩 포장해서 나눠줄 심산이다. 사실 내가 다 그리면 정말로 좋지만, 나는 큰 캔버스 꽉꽉 채우는 그림만으로도 못 채워서 야단임을 잘 안다.




오늘 옷과 책도 정리했다. 옷은 늘 입을 게 없는데, 신기하리만치 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남자 친구는 '네가 이걸 다 입는 게 정말로 맞아?' 하면서 놀리지만. 신혼집에 원래 구성되어있는 드레스룸 외에 옷방을 만들지 않으려 최대한 비운다고 비웠는데도, 미니 행거 1개와 박스 3개를 차지하고 있다. 이사 가서 옷이 넘친다면 꼼짝없이 당근 나눔행이다.




서류는 역시 반이 줄었다. 제일 애매한 것은 대학의 전공책들. 버리자니 쓸모가 있을 것 같고, 두자니 절대 읽지 않을 것 같은 딜레마 속에서 아직 졸업하지 않았으니 두기로 했다. 저번 학급부터는 아이패드 pdf로 교재를 관리했는데, 앞으로는 계속 그렇게 관리할 예정이다. 인강을 들을 때 꼭 아이패드가 있어야 한다는 게 불편하지만, 비용과 자리 차지 비용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




책은 신권들이 많은데, 내가 사는 지역에는 중고 서점도 없고 당근에도 딱히 인기 없을 듯해서 일부를 추려 남동생에게 보내려 한다. 사실 거실 책꽂이만 정리해서 이미 읽은 책은 7권 정도만 남겨뒀는데, 독서 책상까지 정리하면 꽤 남을 듯싶다. 누군가 새책이 좀 필요하면 주고 싶은데, 주변에 카페 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한 번 돌아보려 한다. 들고 가자니 무겁고, 보내자니 아쉬운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옷을 정리하는데 입자니 작고 버리자니 새 옷인 옷들이 나왔다. 친한 친구 스타일의 보이쉬한 옷들은 간추려 선물하겠다 했고, 원피스류는 정리해 당근 나눔으로 올렸더니 금방 팔렸다. 당근 앱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가끔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 있을 때만 쓰곤 한다. 누군가 반응하니 괜히 재밌어서 코타키나발루에서 사 왔지만, 익숙지 않아 신지 않던 새 커플 쪼리도 나눔 했다. 또 누군가 금방 본인이 가져가겠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남자 친구가 이것도, 저것도 나누라며 신이 났다. 그가 평소에 이렇게 물건을 치우는 걸 좋아하는지 몰랐다. 일단 4인용 텐트와 캠핑 장작을 나눔 했다. 4인용 텐트는 지지대가 하나 끊어졌고, 캠핑 작장은 행사 때 불멍 한 번 하고 고이 있던 물건이었다. 내가 봐도 사실 괜찮은 물건들이라, 올리고 10분 만에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괜히 뿌듯했다.




당근 톡을 확인하던 와중, 옷을 늦게 봤다는 한 주민이 있었다. 나이 드신 지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눔 하고 싶은데, 당근을 할 줄 몰라 대신 톡을 했다고 했다. 아마 내 옷이 사이즈가 조금 커서 어른들도 입으려 했나 보다. 옷은 이미 팔렸는데.. 마음이 고와 집을 한 번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어르신이 쓸만한 것은 따로 없었다. 음.. 하던 와중 청소기와 물걸레, 커피포트 등의 가전이 눈에 띄었다.




어차피 자취용이라 결혼하면 좋은 혼수로 사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쓰임이 다하지는 않았다. 혹시 가전도 괜찮냐고 연락을 드렸고, 괜찮다는 톡이 왔다. 스툴, 스탠드 조명, 선풍기, 서큘레이터, 커피포트, 공기청정기, 행거, 빨래건조대, 무선청소기, 물걸레기계, 이동식 트롤리... 자취용이라 썩 좋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어려운 분들은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가습기랑 tv 등 몇 가지는 비슷한 시기에 자취를 시작한 친구가 가져간다고 했고, 그 외의 것들을 추리고 미리 사진을 찍어서 필요한 것만 드리면 되겠다 싶다. 쓰임이 있는 물건을 버리는 건 완전 반대인데, 어쨌든 잘되었다. 곧 창고도 정리해야 하는데, 거기는 별의별 물건이 다 있다. 파라솔도 나눔 할 예정이다. 오래된 수건들은 강아지가 있는 센터에서 기부받는다 하고, 그릇도 왠지 버리긴 아까운데 어디에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하는 정리와 나눔. 늘 물건이 적게 사는 게 답이라면서, 왜 그렇게 살기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안 쓰는 학용품도 꽤 많았는데, 정말 미얀마 기부에서 쓰임 있게 써서 다행이다. 현대사회는 역시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다. 직접 산 물건이면 기부라도 하지, 어디서 받아와서 각 지자체 로고와 행사명 이 잔뜩 프린터 된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버리자니 아깝고 쓰자니 손이 안 간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기부와 중고 문화가 활성화될 것 같다. 유럽 시민들은 벌써 물건을 사는 것 자체에 환경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니. 내가 사는 곳은 소도시라 중고 장터가 많이 있지도 않고, 기부를 하려고 해도 연고 없이 온라인에서 기부처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나부터, 모든 물건의 쓰임을 최대한 찾아주는 역할을 해야지.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상세히 공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박약의 결혼과정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gazine/bakya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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