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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Dec 31. 2021

20대의 마지막 날에

내 10년은 늘 주변인이었다. 

29살의 마지막 날에는 역시 글을 쓰는 맛이다. 오늘 10년을 딱 돌아보자면, 후회 하나 없이, 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고 덕분에 얻었던 게 참 많았다. 많은 사람이 날 거쳐갔고, 남을 사람들은 남았다. 특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남았다. 삶에 있어서는 우왕좌왕하는 발걸음들이 모이고 모였다. 가까이서는 정말 정신없지만, 항공에서 보면 거친 방향성과 규칙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누구의 삶 고유의 복잡한 스토리들이 있겠지만, 내 10년은 늘 주변인이었다. 준비하던 미대에서 탈락하고 사범대에 와서 적응하지 못했고, 졸업 후 문화 쪽으로 방향을 바꿔 근무하다가 지역도 여러 번, 회사도 여러 번 옮겼다. 지역에 따라 어울리는 사람들도 다채롭게 바뀌었다. 그간 다시 미술을 시작하고 글을 시작했다. 전문성과 관련해서는 '사실 제가 이걸 전공한 건 아니고요...'를 제일 많이 말했다. 가장 전문적이지 않은 말이었다.


다들 나보고 어떻게 그렇게 중심을 꽉 잡고 살아가냐는데, 단 한 번도 어디에 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본인을 믿을 수밖에 없다. 어디서나 중심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기반은 본인뿐이다. 이걸 꼭 비관적으로나 슬프게 들을 필요는 없다. 그저 태어나보니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듯이 그냥 그럴 뿐이다. 주변인은 주변인만의 자생력과 창의성, 그리고 더 예리한 다른 감각들이 있다.


10년간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나를 찾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던 지난날들이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면 빠져들어보고, 일단 신청해보고, 일단 저지르는 일들이 반복이었다. 잘하고 말고는 그다음 일이었을 만큼 나는 갈급했고, 속해있는 곳들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내가 그곳에서 미래성을 보지 못한다면 소속하지 못한 곳들이었으니.


토익이나 자격증처럼 교과서적인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실무든, 관심 가는 것이 든 간에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때는 남들도 다 그런지만 알았지만 돌아보니 꽤나 많은 성취를 하며 살았다. 그리고 분명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내 기질과 성향, 남들이 보는 나에 대한 것들은 이제는 꽤나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낀 곳은 가족들과 남자 친구와의 관계였다. 덕분에 고모와 이모들과는 지금 거의 매일 연락할 만큼 두터운 관계가 되었다. 가족들과는 연락보다는 생각을 많이 나눴다. 서로의 스타일을 탐색하고 끝없는 토론이 펼쳐졌다. 주제는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고 운동이 되기도 하고 일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매 년 여행도 꾸준히 가곤 했다.


언제나 안정적인 성향의 남자 친구와는 큰 갈등 없이 결혼을 준비 중에 있다. 내년은 누군가의 아내로서, 또 누군가의 엄마로서 지혜롭게 살았으면 한다. 장기 연애라 결혼에 대해 큰 로망이나 기대가 없었는데, 가까워질수록 소속감과 책임감이라는 게 생긴다. 내가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퍼서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가족과 친척이 아닐까 싶다. 평생 분리될 수 없는 관계들의 소중함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도 10년간 꾸준히 한 것은 운동과 독서이다. 일단 아침운동이든, 수영이든, 요가든, 걷기든, 잠시 쉬었다 했든 어쨌든 운동을 꾸준히 했다. 누가 봐도 예쁜 몸매라 말할 순 없으나, 스스로 초인적인 체력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어쨌든 성공이다. 가능하다면 다음 10년은 식사도 같이 조절하고 싶다. 채식에 가까운 음식들을 세끼 칼같이 시간 지켜 소식하는 것,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는 것이 목표이다.


독서는 이제는 삶에 제할 수 없는 쾌락이다. 솔직히 나는 조용한 환경에 책만 많이 주어진다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살 듯하다. 도서관이 없는 곳은 잘 없으니까. 만약 외국이라면, 곧 죽어도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맨날 도서관에서 살 것이다. 다음 10년은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글쓰기도 꾸준히 하고. 특히 자연과학과 예술은 언제나 궁금한 분야다. 독서는 모든 분야에서 성공이다.


가장 젊고 예쁘다는 20대. 초반에는 한두 살 차이에도 헌내기라 속상해했고, 젊다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며 내가 곧 세상을 바꿔버릴 만큼 잘난 줄 알았으나, 계급 피라미드의 최하위였던 사회초년생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나는 본래 누군가의 밑에 있는걸 못 버티는 성격이다. 사람인지라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인데 이래서 내가 어디에 소속이 잘 못된다. 나 잘난 재미로 사는 사람이라.. 


내일부터는 30대가 된다. 갈수록 안정적일 줄 알았으나 갈수록 상황은 불안정해지고 있다. 대신 그 혼란 속에서 안정을 만드는 법, 단단해지는 법, 나만의 길을 걷는 법을 배웠다. 가장 감사한 일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이다. 나만의 길로 걸어가는 순간 경쟁자는 없다. 모두 협력자일 뿐. 이제는 그저 앞으로만 나가고 싶지, 단 하루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그간 충분히 알차고 모든 결정에 후회 없이 살았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무대이길 바란다.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고, 결국 해결하는 일들은 어디서나 재밌다. 몇 달 여유롭게 쉬었으나, 내일부터는 다시 빠르게 움직여 돈을 열심히 벌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경영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30년대의 마지막 날에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부디 지금처럼만 후회 없고 감사한 삶이었으면, 나만의 길을 개척해 당차게 걸어갔으면 한다. 20대 내내 정말로 수고한 나에게 집채만 한 파도 같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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