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약 Jan 16. 2022

그를 선택한 이유

결혼을 한다 하니 쏟아지는 질문 

우리는 사귄 지 6년 차에 자연스레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소식을 알리고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은 그를 선택한 이유였다. 사실 한 이유가 뾰족해서 그를 선택한 것이 아녔기에, 그저 '인성이 좋아서... 자유롭게 둬서...'라고 말했었지만. 요즘 곰곰이 고민해보니, 사실 큰 이유가 하나 있다.


만약에 언젠가 우리가 자산이 리셋되는, 혹은 관계와 건강을 제외하고 그에 준한 최악의 상황에 앉게 된다면, 우리는 분명 그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먼저 5초 정도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결혼 준비와 6년간 나름이 굽이굽이들을 지금껏 이렇게 지내왔다. 


나는 성향상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구속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터치하거나 자잘한 잔소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나쁜 게 아니고, 단지 나랑은 그저 맞지 않을 뿐이다. 너무 기질이 다르니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말은 쉽지만 6년간 맨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여자 친구와 연애하면서 쿨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유려하게도 내가 싫어하는 점들을 피해왔다.


오늘 시골에서 세차를 하면서 뭘 잘못 건드렸는지 와이퍼가 깨져버렸다. 잠깐 공구 가지러 간 아빠가 돌아왔고, 내가 '오잉, 아빠 이거 깨져버렸넹?'라고 말하니 '뭘 깨트렸는데?' 하다 떨어진 와이퍼를 보고 웃는다. 이 짧은 순간, 나는 그토록 찾던 그를 택한 이유가 생각나버렸다. 무언가 상황이 닥치면 '오잉'이란 추임새를 넣고, 끝에 ~ㅇ을 붙여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나는 내가 한 잘못, 혹은 안 좋은 상황을 솔직하게 오픈하기 편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래서 부모님께 타지에 살면서도 무언가를 속이거나 말하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특히 감정에 대한 건 더욱 솔직하다. 가끔은 말하기 불편한 것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꼭 말한다. 엄마도 쿨해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나면 이미 그래 분걸 어쩔 거야 ~ 라며 만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돈 때문에 집 때문에 스케줄 때문에 크게 싸우기도 했다. 동갑이고 6년 차인데도 여전한 기싸움은 아주 쟁쟁하다. 결혼에 관해서 이제 싸우는 단계는 넘어갔고 굵직한 선택들은 끝났다. 둘 다 서로 참는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도 절대 참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살면서 꼭 오지 않을 순간이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올 수도 있는 최악의 순간. 그 순간의 첫 5초가 긴장도 불안도 걱정도 아닌 웃음이면 한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서 갈등을 건강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감정을 오픈하고, 문제를 전달하며 걱정하거나 스트레스받아하지 않는 것. 줄이자면, 난 내가 졸리는 그 모든 상황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 


사실 앞으로 올 일도 없을 것 같은, 그 가상의 5초. 투명하게 보이는 그와 내 반응에, 이 정도면 솔직한 미래를 기대해도 좋겠다 싶다. 매일 행복하다며 웃는 얼굴과 장난기가 가득한 그. 그는 지금은 이사 갈 생각에 설레고 있고 나는 내가 앞으로 펼칠 내 개인적 커리어들에 설레고 있다. 지금껏 의식하지 못했지만, 성장배경이 녹아든 그를 선택한 이유. 나는 앞으로 어떤 큰 일에도, '오잉~ 00가 돼버렸넹?'라고 쉽게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 딱 맞는 가전 준비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