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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vs 리조트

청명한 고성에서

by 박약

어제도 4시간, 오늘도 4시간을 주 달려 고성에 왔다. 이번 여행은 아주 심플하다. 3박 4일간 매일 최소 4시간은 달려 숙소에서 숙소를 이동하고, 중간에 한두군데를 들린다. 일년반만에 본 동해는 역시나 웅장하고, 심플하고 아름다웠다. 가까운 남해로 갔다면, 아니 부산 포항까지만 갔어도 훨씬 땅에 발붙이고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텐데, 달리면서 생각나는 것과 대화들도 많다. 사람은 일단 집에서 나와서 움직여야 한다.


남편과 8년 전 연애 초에도 강원도에 왔다. 내일로였는데, 말이 내일로였지 호화 여행이였다. 기차만 탔을 뿐이지 매번 펜션에 호텔에.. 게다가 그때도 난 비상한 구석이 있었던것 같다. 내일로도 보통 하는 루트의 역방향을 타서 늘 자리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함께 가는 긴 여행이기도 해서 신발에 가방에 티셔츠에 커플 용품도 엄청 맞췄다. 남편이 돈을 다 내서 몰랐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때 일 그만두고 돈이 하나도 없어서 친구들에게 빌려서 다 사고 갔다왔다고 한다.


그럼 좀 같이 내자고 해도 됐을텐데, 자존심에 죽어도 그 말을 못할 남편이 눈에 선했다. 물론 나도 가끔 밥정도는 샀겠지..? 솔직히 좀 도도하게 연애했던 편이라, 비용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그 내일로에서 나는 면접 연락을 받게 되고, 다녀와서 문화기획자로 첫 발을 딛게 된다. 일주일 내내 다정하고 따스했던 그 남자는 벌써 시간이 지나 매일 내 옆에서 자는 남편이 되었다. 연애 초에 우리의 신뢰관계에서는 내일로 여행이 아주 크게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이후로 나는 연애에는 긴 여행이 되게 중요하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지만 또 써먹을 일은 없었으면 한다.


코로나가 심하던 결혼시즌, 신혼여행도 강원도로 왔고 지금 태교여행도 강원도로 왔다. 전남에 사는지라 제주도는 해마다 갈 정도로 가깝다. 오히려 강원도가 제일 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의미있는 여행이나 긴 여행은 오히려 강원도로 온다. 그 중, 오늘이 제일 높게왔다. 바로 고성이다.


바다쪽에 호텔을 잡을까, 산간지역에서 눈을 볼까 고민하다 산간지역에서 눈을 보기로 했다. 작은 스위스 같다는 말에 이 리조트를 잡았는데 생각보다 눈은 별로 없고, 날은 따뜻하다. 그래도 그냥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숙소를 잡을때 늘 호텔과 리조트를 고민한다. 요즘은 호텔식 리조트도 많지만..


진도 쏠비치가 처음 생겼을때, 뭣도 모르고 넓게 놀자며 성수기에 둘이서 큰 방을 예약했다. 이왕이면 취식이 되는데가 좋겠지? 하며 취식도 가능한 리조트로. 워낙 기대감이 많았기에 신나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그게 우리뿐이 아니였나보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비릿한 새우굽는 냄새가 퍼졌다. 누군가 문을 열고 요리를 하는 모양이다. 비린걸 잘 못참아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남편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단 숙소에서 짐을 푸는데 우탕탕탕 소리가 한가득. 아마 양쪽에 대가족이 온듯 싶었다. 이번에는 소음에 민감한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취식하지도 않을거였는데. 우리는 삼십분 뒤, 취식하지 않는 방으로 룸 체인지를 요청했다. 훨씬 조용하고 나았다. 그래도 옆에 호텔을 잡을걸.. 싶었다. 아름다운 바다뷰와 수영장보다 일그러지던 남편 얼굴이 먼저 기억나는 추억이다. 그 이후로 큰 방, 성수기, 취식가능한 리조트는 우리의 옵션에서 지워졌다.


남편이 교대근무를 하고 나도 일이 축제단위로 끝나는지라 자연스럽게 여행은 거의 평일에 간다. 주말에 쉬는 달이면 그간 밀린 가족행사, 친구들과의 약속을 가느라 바쁘다. 평일에는 왠만하면 조용하고,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차도 크게 밀리지 않아서 우리에게 안성 맞춤이다. 그 이후로는 크게 숙소로 불편한 점은 없었다.


우리는 시골로 잘 떠나는 편이다. 여행이 길어지고 여러군데를 찍으면 관광도시를 한 두군데 끼는 편이다. 확실히 관광도시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주 잘되어있고 정돈된 놀 거리들이 많다. 사람이 많은 축제기간에는 잘 가지 않기에, 평소보다는 조용히 즐기는 편이다. 가까운 여수를 자주 가기에 나름 신축 호텔들과 리조트들에는 익숙한 편이다.


관광도시도 아닌데 도시규모가 작으면 어차피 규모 큰 호텔이나 리조트가 거의 없다. 그래서 신축펜션이나 뷰가 좋은 곳을 위주로 고른다. 사실 몇 군데 없기에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가격도 관광도시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고, 예약하기도 쉬운 편이다. 또 주변에 갈 곳들이 정돈되지 않고 황량하고 넓은,, 살짝 날 것의 느낌이 나는경우가 많은데 난그런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곳의 고즈넉을 즐기는게 좋다. 그런 도시들은 늘 맛집이 정말 맛있다.


관광도시거나 도시규모가 크면 규모 큰 호텔이나 리조트가 많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소도시에 살기때문에 이왕이면 큰 호텔이나 리조트를 선호한다. 지금 아니면 이렇게 크고 세련된 곳을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나는 아침에 바다를 보며 조식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우리는 오션뷰를 제일이라고 치지만, 가끔 특화된 리조트들이 있다. 지금 온 설악벨리처럼, 스위스틱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라던지 아님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다던지, 조형물이 많다던지.. 그러면 또 그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사실 큰 호텔같은 경우에 태반이 만족스럽다. 우리는 아직 애도 개도 없기에, 굳이 편의시설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호텔은 대부분 침대가 크고 편안하고, 조명이 부드럽고 로맨틱하다. 엘레베이터만 타면 한 공간내에 아름다운 로비가 나오고 대부분은 책도 꽂혀 있다. 무엇보다 방음이 되게 잘 되는 편이다. 요즘은 호텔식 리조트도 많은데 모두가 포함이다. 또 높은 층고에 뷰가 좋아서 눈으로 보는 시원함도 있고 대부분 인테리어가 매우 세련되어 있다. 크게 비비큐나 요리해먹을 의사가 없는 성인 두명이 와서 자고 쉬기에 정말 편한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지역에도 호캉스를 하러 많이 떠난다. 근데 호텔에가면 할 수 있는게 거의 쉬는 종류다. 내부에서 수영하기, 책읽기, 대화하기 .. 왠지 모를 무거움에 사람이 정적이된다. 그래서 아주 바쁘다가 프로젝트가 딱 끝났을때! 정신없이 달리다가 헉헉대며 몰아칠때는 보통 호텔을 선택한다. 이때는 여행도 필요 없다. 그저 호텔에서 쉬면 되는 것이다.


리조트 같은 경우에는 복불복이 많다. 큰 호텔이나 리조트나 사실 비용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보통 리조트는 조금더 노후된 경우가 많고, 훨씬 넓다. 오늘 온 곳도 우리는 침실이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두개씩 있고, 옷방도 따로 있고 그런다. 취사가 가능하지만 보통 리조트에도 조식과 디너서비스, 룸서비스가 있어 우리는 취사를 하지 않는다. 리조트는 가능하면 독립형으로 써야 한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아이나 강아지와 많이 오기때문에 나가면 정신없기도 하다. 최근에 거제 벨버디어에 갔는데.. 여긴 호텔식 리조트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식당에서 앙앙 우는 아이케어를 하나도 안하는 부모때문에 떡국먹다 체해서 내내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 조식은 아이들 존을 따로 나눠놔서 매우 조용하고 고상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보통 시끄럽고, 뛰어다니고, 정신없으면서 귀엽다. 낯선환경에서 더 신나기 마련이니까. 솔직히 이런 면때문에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소음에 질색팔색하는 편이다.


넓은 리조트는 가족이 많이 오기에 즐길거리가 많기도 하다. 동물이 있는 곳도 있고, 산책로나 조명이 예쁜 곳도 있고, 특색있는 곳도 있고. 그런데 넓어서 우리 둘이 쓰기엔 약간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넓은리조트는 친구들과 오는게 훨씬 재밌는거 같다. 여자들끼리 별 얘기를 다 하면서 맛있는걸 만들어 먹고, 새벽을 새다 까무룩 잠드는 곳. 자연휴향림도 비슷한 이유로 매우 좋아한다. 새벽에 산책하는 맛도 있고.


호텔과 리조트. 사실 우리만 고민하지는 않을거다. 매 번 여행에서 모두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늘 이전 숙소에서의 기억은 휘발되기 마련이니까. 우리도 몰랐는데, 강원도를 장기로만 오다보니 그래도 유명한 곳들은 다 갔더라고. 곧 아가가 생기면 우리도 호텔보다는 리조트를, 아이 편의시설이 있는 곳을 먼저 고려하겠지. 내일로의 추억을 8년이나 꺼내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추억들을 꺼내고 또 꺼낼거다. 그래서 경험은 참 가성비가 좋다. 평생 이야기할 수 있는 꺼리가 생기니까.


여행에 숙소는 아주 중요하다. 근데 사실 나는.. 호텔이든 리조트든 보다는 성수기와 비수기, 주말과 평일의 차이가 더 크다고 본다. 성수기 주말의 호텔도 정신없기 마련이니까. 리조트야 뭐.. 평일도 말할게 없습니다. 우리는 정신없고 사람많은걸 제일 싫어하기에 최대한 조용하게 머물고 떠나려 한다. 대신 큰 이벤트나 프로모션 등은 체험하지 못하고, 사실 별로 관심도 없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여행을 더 다녔어야 했는데, 아쉽기도 하다. 안다닌건 아니지만 리조트에서 놀고 그랬지 막상 여행은 많이 다니지 않았던거 같다. 갈수록 다들 더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갈텐데.. 뭐 이건 살다보면 기회가 앞으로도 많을 테니. 어쨌든, 모두가 늘 최선의 선택을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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