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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게 제일 좋다는 남편

별빛이 쏟아지는 영덕 바다에서

by 박약

남편과 여행을 왔다. 오늘은 첫 날, 4시간을 달려 영덕에 닿았다. 연애때는 한달에 한 번 이상은 호캉스를 가거나 여행을 갔는데, 살다보니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매달 떠나기도 어려웠다. 세어보니 작년 내 생일 이후로 처음, 세달만이다. 생일에도 남편이 먼저 가자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이 끝나는 편이라 헉헉대며 일상을 살다 큰 행사가 끝나면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 혼자도 많이 다니고 친구 가족들과도 많이 다니고 애인과도 많이 다녔다. 뭐 그리 특출난 삶을 살려 그랬는지 매일이 소화가 되고 말고를 따질 여유도 없이 바빴다. 덕분에 지금 좋은 환경과 신뢰 기반의 사람들과 부비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애쓴만큼 욕심껏 이뤘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 밖에 없다. 일이 그렇게 중요했는데, 몇년 지나니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더라. 과정에서는 많은걸 배웠겠지만.


그래서 내게 여행은 쉼일 수 밖에 없었다. 자연속에서 책읽고, 다들 재밌다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한 차례 늦게 보고, 수학문제도 좀 풀고, 외국어 책도 뒤적거리고, 글도 쓰다가.. 그렇게 펑펑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귀했고, 좋았다. 맛집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핫플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시거나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것도 아니고.. 아침엔 혼자 부스스 일어나 낯선 산책길을 일출과 함께 걷는 것. 저녁 10시 즈음에는 곤히 잠드는게 내가 하는 여행의 일정표였다.


그래서 당연히 여행은 나름 저렴했고, 자주 다녔기에 욕심도 없었다. 이제 전국의 왠만한 곳은 다 다녔고, 난 더 속으로 속으로 다닌다. 뭔 시골사는 애가 더 시골로 떠나? 친구들은 의아한 눈빛을 보내지만, 내게 여행은 여전히 쉼이라 그래. 남편과 다니는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4시간이 걸려 도착한 영덕에서 우리는 대게가 아니라 수제 돈까스를 먹었으니까. 나는 책을 7권이나 가져와서 허둥대며 읽고 있으니까.


긴 시간을 드라이브하고 함께 있다보면 숙명적으로 대화가 길어지게 된다. 우리도 일상속에서는 대화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또 일상대화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4시간을 함께 달려오면 자의 반 타의반으로 다양한 대화를 했다. 이게 또 함께오는 여행의 묘미다.


나와 모든게 다른 남편은 평범한 삶이 좋다고 한다. 결혼하고, 애 키우고, 맞벌이 하는 삶. 애가 몇인지, 개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더 많이 벌면 좋겠지만, 뭐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도 가지고 싶은 차만 가지면, 집만 유주택자가 되면 더 사고싶은 것도 없다고 한다. 매일을 더 가지려 하고 움켜쥐려 하는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지금도 평범해서 행복하다고, 평범한게 쉽지많은 않다고 한다.


우린 24살에 연애를 시작해서 30살에 결혼을 했고, 32살에 아이를 낳을 예정이다. 맞벌이를 하다 아이가 조금 클 때까지는 일을 쉴 생각이고, 애가 조금 크면 다시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요즘 세상에 조금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있을까 ! 그에게는 더 바랄게 없는 삶인 거다. 더 바랄게 없다..라 이건 무슨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나는 늘 생각과 표현이 많고, 하루라도 뭘 더 배우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가고 싶고, 세상도 움켜쥐고 싶다. 다들 뭘 그렇게 빡세게 사냐 하는데, 일부러 애쓰는건 아니고 이런 동기가 강해서 나아가게 되는거다. 항상 무언가를 더 바래왔는데.. 바랄게 없는건 정말 무슨 기분일까. 나도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면 훨씬 삶이 고요했을까. 동동거리지 않고, 바쁘지 않고, 일상에 헉헉대지 않는게 나일 수 있을까.. 고요한 내가 궁금해진다.


사실 그와 나는 아예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다. 둘의 평균 키가 180이 살짝 넘기에 외모적으로도 그렇고, 남이사 글던가 말던가 마이웨이가 아주 강하기도 하다. 캐릭터가 강해 어딜가나 이슈메이커에 톡톡 튀는 내가 평범을 추종하는 사람의 편안함에 끌리다니. 인생은 진짜 모를 일이다. 참고로 그는 캐릭터는 강하다. 다만 본인이 평범을 추구할 뿐.. 또 진짜 욕심이 없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는 마음을 쉽게 잘 나누고 따듯하다.


항상 발전하고 싶어하는 내가 이렇게 평범을 추구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조했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난 전혀 평범하게 살 의사가 없는데.. 당장 30대에도 3군데의 해외에서는 살아보고 싶으니까. 우리의 결혼생활은 어떻게 흘러갈까? 40대에도 돌아보며 글을 쓰겠지만, 내가 노리는 특이함과 그가 생각하는 평범, 어딘가 끝자락에 걸친 좁은 교집합에 맞는 삶이 펼쳐지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은 내가 계획한다고 다 짜져서 보이는 판이 아니라, 그게 알빠냐 싶을정도로 유동적으로 흘러가니까. 거기에 몸을 맞기면 파도를 즐기는거고, 맞서면 피곤해진다고 생각한다. 별이 쏟아질듯 달려있던 영덕 밤바다에서 우리는 평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땐 몰랐는데,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24살은 진짜 어린 나이였구나. 그래도 내일로 다녀오길 잘 했다. 그걸로 8년을 얘기하고 있어.. 경험은 그렇게 가성비가 좋은거야. 하면서. 추억에도 빠져보고, 시덥지 않은 애기도 나눠보고.


오랜만에 또 다른환경에서 둘이서 속닥거리니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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