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생긴 일
컬투쇼에도 냈던 사연을 다시 소개한다. 몇 년 전 여름에 오랜만에 타 지역 친구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오랜만에 가는 광주는 너무 반가웠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내내 수다를 떨다가 맥주도 한 잔 하고 혼자 게스트하우스에 자러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기 전, 근처 양동시장에 맛있는 국밥집이 있다는 소문을 접수했다. 마침 국밥을 좋아하는데, 광주의 맛집이 기대됐다.
다음날 아침, 맛을 칭찬하는 몇 개의 리뷰에 맘이 들떠 부산하게 챙겼다. 친구만 만나고 다시 가는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놀러 왔다고 꽃 블라우스도 입고 짧은 반바지도 입고 굽이 좀 있는 샌들도 신고 나름 꾸몄다. 양동시장과 어울리는 차림새는 아니었지만 어렵지 않게 유명한 맛집의 국밥을 먹을 수 있었고, 속이 꽉 찬 국밥은 빨리도 나왔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유스퀘어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섰다.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는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네댓 분이 모여있었다. 광주의 버스노선은 복잡했고 종류도 많았다. 안내판 앞에 멀뚱히 서서 색색들이 잘 모르는 노선을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할아버지가 내게 뭐라고 하셨다. 광주 사투리를 잘 알아듣는 편인데도, 그 할아버지의 억센 사투리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려 나는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께서는 차가 다니느라 시끄러운 길가에서 내가 잘 안 들린다고 생각하셨는지 목소리를 한 층 키워서 뭔가 말을 거셨다. 앉아있던 할머니 네댓 분의 시선은 이 쪽으로 꽂혔고, 한국어긴 한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을 해석하느라 나는 멍해졌다. 다시 들으면 어떻게 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물어본 것 같긴 한데... 그래서 또 답했다. "네?"
잘 오지 않는 버스라도 오는지 갑자기 버스정류장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셨고, 뭐라고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정류장에 있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몇 명의 외국인 새댁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몇 명은 위아래로 훑어봤다. 리어카가 다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양동시장과 잔뜩 꾸민 젊은 아가씨 한 명. 나는 다시 한번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가 이번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국어교육과를 졸업해서 살면서 이렇게 한국어를 못 알아들은 적이 없는데, 경상도도 아닌데 억양이 너무 세서, 단어들이 들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천천히 듣다 보니 말이 들렸다. 뭐라고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나보고 미국인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이 말이 너무 생뚱맞아서 아무래도 내가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대답했다. "네?"
그도 그럴 것이, 내 외모는 정말 지극히 한국적이다. 친구들이 장난으로 고전 미녀라 하고 아빠는 전형적인 한국인 얼굴이라고 한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넙적하고 흰 둥근 얼굴에 화려하지 않은 이목구비. 중국이나 일본인으로도 잘 오해받지 않는 지극히 한국적인 얼굴이다. 보통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면, 친구들을 '설마'라고 얘기한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나와 마주하고 있어야 이게 정말 웃긴 이야기라는 걸 알 텐데.
다시 들으니 분명했다. 생전 처음 가는 광주의 양동시장 한 복판에서, 한국인도 이해하기 힘든 사투리로 나는 지금 미국인이냐고 질문당한 것이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마침 이 간단한 질문을 몇 번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 외모적으로 누가 봐도 아니지만,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모두의 눈길을 받으며 난 답했다. "아니에요, 한국인이에요!"
너무나 열심히 질문하던 할아버지는 괜히 머쓱했나 보다. "아니 키가 너무 커서 미국인인지 알았지." 내 키는 176cm로 한국 여성 치고는 굉장히 큰 편이다. 굽 있는 샌들까지 신었으니 180cm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전 키가 크다고 미국인이라고 오해산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시선과 괜히 머쓱한 할아버지에게 미안해져서 답했다. " 하하, 그러게요, 헷갈리실만하죠."
그날 양동시장의 국밥 맛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계속해서 질문하던 할아버지와 그 수많은 시선들의 민망함은 생생히 기억난다. 생애 유일하게 바로 해석하지 못했던 광주 사투리이자, 다시 받지 못할 미국인이냐는 질문. 그 할아버지는 지금도 양동시장에 자주 가실까. 다시 마주쳐도 모르겠지만, 혹시나 알아본다면 덕분에 이런 재밌는 에피소드로 글 한 편이 뚝딱 생겨 책으로 나왔다고, 꼭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