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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캠핑 장박 놀러가기

by 박약

친구가 캠핑으로 장박을 쳐놨다고 나와 다른 친구를 초대했다. 초중딩때부터 알던 친구들과의 일박 이일은 솔직했고, 재밌었다. 두 아이를 육아하는 살림천재 친구와 고기를 잘 굽는 고기천재 친구와 귀염천재인 내가 있었다. 워낙 살림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육아도 잘 하는 만물박사 친구의 캠핑장인만큼 없는게 없었다. 바닷가 앞, 유난히 바람이 쌀쌀한 날에 추울까 걱정했는데 난로도 히터도 아주 따뜻했다.


일단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봤다. 살림천재 친구와 내가 봤는데, 난 뭐 요리에 대해 아는게 있어야지. 점심은.. 저녁은.. 아침은.. 되뇌이는 친구 앞에서 카트를 끌어주는게 전부였다. 뭐가 비싼지, 뭐가 싼지, 뭐가 제철인지.. 뭐가 맛있는지 까지도 알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카트 가득 장을 보고 나왔다. 비용은 12만원이 조금 안되게 나왔다. 고개천재와 내가 나눠 내기로 했다.


다시 캠핑장으로 오니 고기천재가 도착해있었다. 오후 1시, 늦은 시간이니만큼 점심을 먹으려 텐트로 들어왔다. 야무진 살림천재가 미리와서 세팅을 다 이미 해논 후였다. 텐트는 자는 곳과 식당이 분리되어있었고, 다 면텐트라 눅눅하지도 않고 보기에도 예뻤다. 평소 아가들이랑 남편이랑 주말마다 오는 친구네 캠핑장엔 없는게 없었다. 우리는 둘러앉아 살림천재가 담아온 양배추, 깻잎, 샐러리 장아찌들과 김치에 고기를 구워먹었다. 고기천재는 고기를 정말 잘 구웠고, 임신 이후 소화력이 부족해 많이 먹지 못하는 나도 얘기하며 먹다 보니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먹고나서는 배가 불러 설거지 후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딱히 산책로가 잘되어있는 편은 아니였지만 바다를 끼고 난 길이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 한마리가 무심한듯 따라왔다. 그래, 시골에 꼭 이런개들이 제일 행복하더라. 목줄도 없이 해치는 사람도 없이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이 자유롭게 졸졸. 사람과 거리를 크게 두지 않으면서 중간 중간 쉬도 싸고 할 일도 다 하면서 멀찍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귀엽고 예뻐서 눈이 한참 갔다.


수다떨며 걷다보니 어느덧 바닷가 선착장에 닿았다. 사람은 없고 배들이 묶여있고, 새끼개와 어미개, 아빠개가 철장 속에 한데 모여있었다. 일반 시골개는 아닌듯 하고 무슨 갈색에 단모종으로 독특한 종이였다. 특이 하게 생긴 새끼개는 우리가 반가워 다가왔으나 어미개는 멀리서도 왕왕 짖어댔다. 아유, 안데려갈게. 바닷가에서 사진을 한두장 찍고 쌀쌀한 날씨에 걸음을 재촉해 걸어왔다.


여유로웠다. 먹고, 걷고, 쉬고, 이야기하고.. 어릴때부터 친한 친구들이지만, 각자의 삶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다. 긴 호흡으로 함께 있다보면 또 긴 호흡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삶에 관해서, 직장에 관해서, 육아에 관해서.. 각자의 성향은 각자의 방향으로 굳어지는 중이였다.


다시 돌아와 따뜻한 곳에 누워 각자 폰도 보고, 낮잠도 자고 일어나니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해가 늬엿늬엿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자 살림천재가 만들어온 밑반찬을 꺼낸다. 누가 살림천재 아니랄까봐. 매실장아찌, 멸치볶음, 시금치무침, 콩나물 무침을 야무지게 선보인다. 안그래도 요즘 소화가 안되서 매실장아찌를 달고 사는데, 통통한 매실장아찌가 유난히 탐스럽게 보였다.


첫번째 요리는 홍합술찜. 술찜이라 술이 들어가나 했는데, 아주 소량만 들어가고 그것마저도 날라간다. 캠핑은 커녕 집에서도 해산물 요리는 절대 하지 않는 나라서, 오랜만에 쫄깃한 홍합을 실컷 먹었다. 먹다가 남겨 나머지는 육수에 파스타 면을 볶아 파스타를 또 뚝딱 만들어낸다. 이 연성술이 신기하다. 두번째로는 콘치즈. 치즈가 뭐 맛있는건지 쭈욱 늘어나는 따땃한 치즈가 너무나 맛있었다. 세번째로는 압력밥솥의 밥. 아.. 압력밥솥 진짜로 맛있네. 감으로 만드는거래서 바로 구매의욕은 식었지만. 남은 고기까지 조금 더 구워먹으니 배가 있는대로 찼다.


최근에 거의 배부르게 저녁을 먹지 못했는데, 얘기하며 천천히 먹으니 끝없이 들어갔다. 근 한달간 제일 잘 먹은 하루였다.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하루종일 말할 일도 없는 집과는 다르게 하루종일 말하니 또 거북함도 없고 소화도 아주 부드럽게 잘 되었다. 소화불량에는 역시 움직이는게 최고인가. 설거지 이후 따뜻한 매실차를 타서 다른 텐트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내가 한 캠핑은 캠핑도 아니였구나. 호캉스를해도 펜캉스를 해도 거의 요리는 사와서 뎁혀먹는 정도만 해서 매우 여유로웠는데, 하루 세끼 챙겨먹는것도 은근 바쁘다.


신년이라 친구들 운을 봐주고 싶은 마음에 타로를 챙겨왔다. 타로 한 번 배우고 싶었는데.. 하며 몇 년을 끌다 1급 자격증을 딴지가 벌써 3-4년은 되었다. 나름 알바도 간간히 하고, 또 재미로 친구들도 봐주고 하며 쏠쏠히 놀고 있다. 이런 경우가 참 많다. 뭐 해야지.. 생각하다가 미루고 잊고살다가 기회가 되서 배웠는데, 살면서 또 은근 쓰게 되는 경우. 요즘은 영어와 중국어가 그렇다. 살다가 또 배우게 될 기회가 되겠지요.


심층 타로를 봐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궁금한것들도 다 답해주고. 타로 잘본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 편이다. 물론 기본적인 카드의 뜻이나 의미나 법칙은 있다. 근데 나는 하나가 더 있다. 카드를 뒤집어 가면 딱 떠오르는 영감들이 있고, 그걸 얘기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가 소름끼쳐하는 경우가 많다. 우는 경우도 많고.. 이건 뭐 창작자로써 가지는 필인건지, 흔히 말하는 신끼인건지 뭔지 모르겠다. 근데 딱 봤을때 생각나는 것들이 있고 그걸 잘 풀어헤쳐서 말해주는 편이다.


친구들도 몇가지를 소름돋아하며 타로시간은 끝났다. 꼭 타로뿐만 아니라 인생고민들도 서로 이야기하며 맞춰가는 시간이다. 이제 가서 씻고, 들어와 누워서 얘기하다 살풋 잠들었다. 평소 10-11시 언저리에 자는데 12시에 자서 6시 반에 깼다. 새벽에 다들 자고 있길래 뒹굴거리며 폰도 보고, 이도 닦고 오고, 산책도 하고 싶었는데 첫 눈이 오고 너무 춥길래 산책은 패스했다. 차에서 책을 가져와 좀 읽다가 살림천재 친구가 깨서 한참을 또 이야기했다. 육아에 관해서, 결혼생활에 관해서, 진로나 돈에 관해서.. 그러다 10시가 되어 고기천재를 깨웠다.


아침밥은 라면과 내가 가져온 쉬폰 빵이였다. 베비에르에서 이모가 사준건데 살림천재 친구가 즐겨먹던 빵이였다면서 반가워했다. 머랭으로 만들었다더니 맛은 심심했지만 허기가 있어 맛있게 먹었다. 삼양라면을 3개 푹 끓여서 찬밥에 많이도 먹었다.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설거지하고 헤어졌다. 와, 캠핑이라는게 알고는 있었지만 더 손이 많이가는 거구나. 왠만한 살림천재가 아니면 하기 힘들겠다- 생각했다.내 성격에는 직접 하는 것보다는 누가 초대해주면 갈 일이 더 많겠지만.


내가 가진 능력은 10인데 주변에 워낙 능력자들이 많아서 100을 누리고 살고 있다. 이 캠핑을 내가 가고 싶어했다면 비용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을거다. 감사하게도 친한 친구가 이미 가지고 있기에 몸만 덜렁와도 즐거운 1박 2일을 누릴 수 있었다. 살림천재 친구는 아기 용품까지도 가득 실어왔다. 고맙게도..


이 친구는 어떻게 이렇게 요리를 잘할까? 이 친구는 어떻게 이렇게 노래를 잘 할까? 이 친구는 어떻게 이렇게 삶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고 멋질까? 이 분은 삶을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살까? 이 분은 어떻게 이렇게 가진게 많을까? 고개만 돌리면 주변의 현명총명이들에게 배울것 투성이다. 삶의 다양한 선생님이 있고, 누군가 나를 껴준다는건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가장 좋은 친구는 혼자서도 잘 사는 친구라고. 나도 내 역할을 온전히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가끔은 나의 세계에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초대받기도 해서 감사하게 누리기도 하는. 서로 존중하고 감사하는 관계, 필요할땐 기대고 서로 찾는 존재가 되고 싶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많아지고 있다. 정말 감사하게도..


감사와 존중, 사랑이 가득한 1박 2일이였다. 다음에 또 편한 상황으로 만나 친구들. 그때까지 모두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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