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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와서 알게 된 것들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

by 박약

5주간의 여행이 끝나간다. 다음주 금요일이면 나는 한국에 도착하고, 내 집에 오랜만에 발을 들이게 되고, 남편을 만나게 된다. 벌써 아직 오지도 않은 그때가 반갑다. 첫 장기 해외 솔로 트립에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걸 배워 남겨보려 한다.


한국에서 나는 쿨하고 별로 이것저것 안가리던 사람이였다. 이렇게 내가 잠자리의 온습도와 소리에 예민한지 정말 몰랐다. 4인 혹은 3인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뒤척이고, 한 명만 더 있어도 신경쓰이고, 여성 전용이 아니면 당연히 신경쓰여 잘 못잔다. 혼자 있을때는 그나마 푹 자는 편인데 동유럽의 겨울 숙소는 내내 추웠다. 춥고 건조해서 마스크팩도 사서 해보고, 목도리도 둘러쓰고 자봤다. 그럼에도, 공기가 차다.


또 한국에서는 정말 왠만한 음식을 다 잘먹어서, 고추장 하나도 싸오지 않았는데.. 밀가루에 이렇게 빨리 물릴 줄이야. 음식은 내내 나를 고생하게 했다. 중동 음식 맛이 강하고 간이 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정말 거의 내내 굶었다. 시리얼과 초콜릿, 우유로 연명하는 삶이였다. 중간에 베지터리언 인도친구를 만나 한창 잘 먹다가 아르메니아에서는 고급 식당들만 가봤다가, 조지아에서는 나름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한식이 그립다. 내가 이렇게 잘 굶는 편이였나..싶다가 너무 굶어서 힘이 없어보기도 했다. 하도 디저트와 단 걸 먹어서 혈당이 걱정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나는 여전히 외향적이다. 영어를 잘하는게 아니라 말을 잘하는 편. 프리 토킹이 아니라 토킹이 된다. 먼저 적극적으로 묻기도 잘하고, 오랜 대화도, 농담도 잘 즐긴다. 어떤 한국인은 영어를 잘한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이정도면 어쩌면 성공 아닐까. 사실 해외여행은 영어를 못해도 다닐 수 있다. 다만 잘하면 훨씬 친밀하고,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전형적인 콩글리쉬로, 억양이 하나도 없는 평이한 영어. 여기서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많이 되었다. 어쨌든 회화를 배워야돼... 무엇보다 많이 노출만 되도 성공이다. 아마도.


신기했던건, 내가 해외에서 꽤 이성적 매력이 없다는 것. 귀찮게 하는 남자가 전혀 없었다. 이건 편하기도 했는데, 약간 놀라기도 했다. 따로 밥을 먹어도, 티를 마셔도 우리는 모두 저스트 프랜드였다. 물론 결혼하기도 했지만, 그 말을 꽤 나중에 하더라도 그저 프랜드였다. 오히려 동행자에게는 남자들이 붙어 귀찮게 했다. 내게 모두 호의가 있는 친구들만 붙었고, 같이 편하게 소통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꽤 이성적 매력이 없는 편이라 저스트 프랜드가 많은데, 동서양 다 이럴줄이야...!


여전히 여자들에게 더 매력이 많은 편이다. 예쁘다는 소리도 꽤 듣고, 친해지고 싶다는 소리도 꽤 듣고. 이건 억울하리만치 한국에서도 똑같다. 그래서 남사친도 많고, 사람의 호의를 의심하지도 않는다. 이런건 동서양 다 같구나 싶어..되게 신기하다. 하지만 여자가 또 이성적 매력으로 느끼는 경우는 없다. 성격이 남자다운 면이 있는데, 그래서일까? 사실 되게 편하기도 하다. 호의를 베푸는 다정한 남사친들만 주위에 있다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편한 인간관계가 넓다는 것이 너무나 좋다.


동행하는 친구는 솔로인데, 만약 내가 솔로였다면, 해외 여행을 와서 맘에 드는 외국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물어봐서 하루정도 데이트를 즐겼어도 꽤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결혼했으니 할 수 없고, 누군가 솔로가 솔로트립을 한다면 정말 추천해주고 싶다. 어쩌면 꽤 재밌는 추억거리가 될 지 모른다. 설렘이 가득한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만드는 재밌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뭐 원래도 보수적이면서 개방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외국에서는 더 보수적인 편으로 변하는것 같다. 다들 한번은 해본다는 시샤도 입도 대지 않는다. 절대 아주 취할만큼 마시지 않는다. 배가 부를만큼 먹지 않고 자제한다. 여전히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고, 꾸준히 글을 쓰고, 가능하면 아침 걷기를 한다. 내가 이렇게 신념적인 사람이였나 싶다. 한국과 많은게 바뀐듯, 그대로다.


더 개방적으로 바뀌는 부분은, 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감사를 더 표현하고, 잘 웃는다. 그리고 아무 외국인에게나 너무 쉽게 말을 건다. 그리고 내가 별로면 바로 노땡큐-. 의사표현이 확실해졌다. 다른 친구들이 확실한걸 보면서 배운것도 있고,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속얘기도 잘 한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인생이겠거니.. 하는 면도 있다. 다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고나 할까.


내 외모가 어려보이는 날도 있다니, 신기했다. 여기서는 보통 22-25살, 많아도 27살로 본다. 한국에서는 꽤 성숙한 외모와 말투인데, 이렇게 어려보일 수 있다니. 나와 동갑인 친구들은 정말 40대가 아니라고? 싶을 정도로 성숙해 보인다.뭐 인종마다 다른거니까.. 전통적인 외모덕에 한국인임을 알아보는 이가 꽤 있다. 또 나만큼 큰 여성들도 꽤 있어서 참 좋았다.


여전히 나는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충실히 산다. 바쁘지 않으면 뭔가 심심함과 허전함도 잘 느끼고, 인형극이니, 바베큐 파티니 자꾸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한다. 쉬려고 온 여행인데, 카즈베기에서 말고는 사실 거의 쉬지 못했다. 사실 나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더 느끼는 중이다. 그게 어쩌면 약간 슬프기도 하다. 여기서도 여전히 시간 가성비맨으로 살고 있다. 환경이 바뀌어도 사람의 근본은 같구나.


다음에는 짐을 더 가볍게, 간략히 싸서 올 예정이다. 혼자서 5주는 솔직히 너무 길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해낸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친구 4명이서 오면 제일 재밌을 것 같다. 혼자서는 그냥 용기를 얻고, 재미있는 경험을 가진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혼자서는 2주정도가 어느정도 아쉽고, 적당하다. 한 국가에 1주일정도면 사실 충분하다. 다음에는 영어도 어느정도 배우고, 스페인어도 조금 배우고, 계획도 미리 잘짜고 조금은 현명하게 움직여야지. 이번엔 처음이니까, 그냥 생 날것인 나를 보는 경험으로 치기로 했다.


그럼에도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동기가 가득 찼다. 나는 엉덩이공부는 잘 못하고, 말하는건 좋아하고 영어 울렁증도 없으니 말하는것 위주로 배우고 싶다. 회화 과외가 좀 있으면 좋을텐데..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몇개국어를 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니 꽤 부러웠다. 나는 말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내가 생각한만큼 표현하지 못하면 슬퍼서 죽겠더라.


해마다 한 두번은 해외를 나와야겠다. 새로운 자극은 언제나 재밌고 또 새로운 외국인들과의 대화는 늘 신선하다. 첫번째로 풍경보는게 좋았고, 두번째로 외국인들과 대화하는게 좋았다. 새로운 매너와 정보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나도 따뜻하게 품어주고, 또 잘 도와준다. 순수한 마음에 많이 감동하기도 했다. 평소 여행자들을 만날 일은 별로 없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싶어.


다음에 또 언젠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색다른 환경에 가면 좋겠다. 바로 다음 해외는 약 2주간의 출장이였으면 한다. 일을 하면서 나와있는건 아마 또 다른 느낌일테다. 조금 더 긴장할테고, 조금 더 바쁠테고, 자유도도 줄 테지만 많은걸 배울거다. 다음 국가는 파키스탄이였으면 한다. 바다와 함께 있는 사막이 너무나 보고 싶으니까. 다음에, 다른 곳에서 또 이러한 여행기를 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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