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베기 룸스호텔에서
요즘은 카즈베기에 묵는다. 동서남북 완벽하게 멋진 산들에 쌓인 도시, 겨울엔 자주 눈때문에 도로가 막히는 도시에 있다. 눈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예약이 취소되어 패밀리룸을 혼자 쓰게 되었다. 내겐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오랜만에 넓은 방을 혼자 쓰려니, 너무나 편하고 좋다. 남들과 부비는 소음이 전혀 없고, 원할땐 불을 키고, 원할땐 소리를 내도 된다. 아주 아주 아주 좋다. 원래는 이곳에서 호캉스를 하려 했는데, 호스텔캉스 중이다. 호스텔에서도 경치는 아주 아름답고, 아주 고요하고, 침대는 부드럽고, 소파베드는 넓다. 딱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높은 테이블이 없어 노트북하기 불편하다는 것, 20분 걸으면 전망이 유명한 까페가 있다.
하루종일 할 일은 없다. 있는건 그저 아름답고 고요한 산을 보는 것과, 점심을 챙겨먹고 다음 여행계획을 짜야한다는 것 정도.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를 함께 갈 한국인 여성 동행을 구해 톡으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조지아 여행정보까페에 길게 글을 남겼고, 까페에서 죽치고 있다가 이 글을 쓰고 러시아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러 내려갈 예정이다. 또 너무 늦게 내려가면 꽤 추워질듯 하다.
오늘은 내려가서 조지아식 갈릭 치킨을 먹고, 많이 남아 싸왔다. 슈퍼에 들리려는데 얼음에 꽈당!! 무릎으로 넘어져서 툭, 혹이 불거졌다. 아유 아파, 아픈것도 아픈건데 사람들이 많아서 부비고 일어나 절뚝거리며 장을 봤다. 이 갈릭치킨은 아무리 봐도 밥이랑 먹어야 딱인데, 냄비밥이라도 해볼까 싶어 쌀을 사고 바나나를 몇 개 사고 물을 사왔다. 까페와 식당이 정 반대라 둘 다 가기가 귀찮다. 낼은 남은거에 밥해서 같이 먹어야지.
넘어질때 비닐이 찢어졌는지, 갈릭 소스가 뚝뚝 흐른다. 부츠에 있는대로 흘리고 냄새맡은 강아지가 쫄래쫄래 쫒아온다. 빵을 찢어줬는데 먹지도 않고 따라온다. 그래도 널 줄순 없어. 널 주면 내가 내일 이 다리로 다시 내려와야 하잖니. 숙소에 들려 흥건한 바나나를 닦고,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넣었다. 이도 닦고 정신을 차리니 2시. 볕도 반짝이는데, 뷰로 유명한 룸스호텔로 가야지.
20분쯤 고요히 노래를 들으며 이동하니 룸스호텔이 있다. 와, 전망은 정말 기가 맥힌다. 사진을 몇장 찍어 주변 단톡방에 올렸더니 반응이 핫하다. 모두가 치를 떨게 아름다운 전망이다. 내일 또와서 몇시간 있어야지. 노트북을 키고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 가는 기차를 몇개 찾아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좀 떨었더니 벌써 6시가 다되간다. 오늘 같이 와인을 먹자고 했는데, 슬슬 내려가봐야겠다.
카즈베기의 새벽은 스산하고 아름다웠다. 폭 쌓인 눈들 사이로 건물들의 빛이 흘러나왔고, 코발트 블루 빛이 마을을 감쌌다. 새벽에 살풋 깨서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를 보면서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했다. 정말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저 주인공은 도대체 뭐로 먹고 살길래 이렇게 시간이 여유롭고, 헛짓을 할 시간이 있을까 싶다. 똑똑한건지, 아닌건지. 뭔가 정보가 더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서 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내가 이 세상에서 소리없이 사라진다면, 의심할 사람 몇은 있어야 겠다. 갑자기 내가 싸가지없게 군대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 나는 그런 관계를 잘 맺고 살고 있는걸까. 언제나 로망이였던 목가적인 쉼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 하이튼, 나같이 외향적인 애들은 혼자 있을 틈을 주면 안된다. 다시 잠들었다가 9시에 기상, 인스타를 둘러보다 10시쯤, 나가고 싶다는 충동에 천천히 챙겨 12시쯤 나와 점심을 먹었다.
카즈베기에서 목가적으로 쉬고, 또 우쉬굴리에서도 목가적으로 쉴 생각이다. 하루 목가적으로 쉬었는데 되게 괜찮다. 까페에서는 어쨌든 다른 사람과도 소통하고, 방에서는 또 혼자있고. 도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혼자라는 기분에 외로웠는데, 카즈베기에서는 충만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천성이 시골파인가보다.
로망이 생겼다. 지구의 끝까지 보일것만 같은 평원, 뒤로는 울창한 산이 있는 그런 자연. 자주 날씨에게 지는 그런 자연에서 아이 셋 낳아 맘껏 동물들과 뛰놀게 하면서 키우고 싶다. 그런 시공간을 즐겨보고 싶다. 나는 원하는건 어떻게든 하는 사람이라, 또 언젠가 분명 이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여전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어떻게든 나를 표현하고 있겠지.
최근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정말 하고 싶은게 뭐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든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게 만들어야지. 그러려고 돈버는거, 시간 아끼는거 아닐까? 나는 원하는 것은 다 어떻게든 이뤄낼꺼다. 이 여행도 마찬가지다. 내겐 언제나 하고 싶은것과 욕심들이 새롭게 주어진다. 그리고 차근차근 어느정도 다 해나가고 있다. 자꾸 새로운 것을 하고 자극을 받으면,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또 이뤄내게 된다. 그래서 난 이것, 저것을 도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도시에서는 외롭지만, 시골에서는 포근한 것처럼 천성이 그런가보다. 더 자세히 스스로를 관찰하고 있다. 고개만 돌리면 장관이 펼쳐지는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감사하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