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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장기여행

다시 조지아로 온 첫날

by 박약

다시 나라를 조지아로 옮겼다. 작은 미니밴은 5시간 반정도가 걸렸는데, 아주 덜컹거리면서 정말 구불거리는 길들을 여러번 역주행하면서 나를 트빌리시에 내려줬다. 차에서는 한국인 2명을 만났는데, 교사 출신이라고 하시더니 아주 젊잖으셨다. 여행준비를 꽤나 철두철미하게 해온 모양이였다. 여기서 만나는 여행객들은 거의 준비를 아주 철두철미하게 해온다. 아주 가성비도 좋고, 아는 정보도 많아 내심 부러웠다.


여행오기 한 달전에는 일도 다니지 않았는데 뭐 그렇게 계획 짜기가 싫던지. 덕분에 좋은 친구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평소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밤을 새서라도 하고, 나름 계획짜는걸 꽤나 즐거워하기도 하는데 왜 그렇게 하기 싫던지가 의아하기는 하다. 감정에 지자면, 그럴때가 있겠지. 사실 조금 이상할정도다. 여기서 내일 내일 계획짜기도 싫은.. 매일 계획짜는 업무를 해서 계획성을 다써버린걸까, 아니면 낯선 자극이 너무 많아서 선택을 하기가 어려운 걸까. 계획은..모두 선택의 연속이니까. 뭐 이런 상황이 주어진 거겠지.


내 첫 장기 해외여행은 아주 우당탕탕, 엉망징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는 것만 보면, 나름 큰 틀 속에서 할꺼 다하면서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는건데 왜 그런 느낌이 들까? 다른 친구들은 알차다고 까지 하는데.. 평소에 너무 바쁘게 살아서 조금의 시간이 나는 것도 아쉽나보다. 해외여행은 참 쉽게 본전 생각이 난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빼서 왔는데, 여기 하루에 얼마가 드는데. 이벤트가 없으면 그런 생각에 쉽게 잠긴다.


그래서 혼자 파고들기 좋아하는 성격은 혼자 여행을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친구랑 오면 좋겠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만 있는 곳에서 혼자는 약간 위험하다. 영어를 잘하면 더 모르겠지만, 나처럼 유치원생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사고와 말의 괴리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꽤나 많은 말을 알아듣는척 하고 있다.


이벤트를 매일 만들자니 비싸고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너무 재밌고, 쉬자니 싸고 편한데 재미가 없다. 그래서 매일 이벤트를 만들다가 지치면 쉬고, 쉬다 지치면 이벤트를 가진다. 데이트립이나 공연같은 이벤트가 있을때엔 혼자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외국인들과 교류하고, 완전히 내 취향대로 움직일수 있기 때문이다. 또 데이트립엔 솔로 여행자가 많은데, 서로 교류하기도 쉽다. 하지만 자유여행이 되면 또 일행이 그립다. 스몰톡을 할 일도 거의 없고, 친구나 가족끼리 온 여행자들이 엄청 부러워진다.


나는 외향적이라 이벤트가 있는게 훨씬 좋은것 같다. 새로운 자극이 넘쳐나는데, 문제는 여기 있는 이벤트를 이제 어느정도 다 했다는 거다. 이럴때는 친구가 그립다. 여럿이서 오면 넘치는 에너지도 있고, 돈을 아끼기도 훨씬 수월하다. 같은 값으로 더 고퀄리티의 숙소와 차량을 누릴 수 있다. 지금은 비수기기에 안그래도 관광객이 없어서 이벤트들도 많이 취소되고 있다.


내일 저녁이면 나는 설산의 숙소에 있을 거다. 한동안 요양하다가, 한번 거처를 옮겨 다시 요양하다가 한국으로 갈 예정이다. 이제는 아마 노트북을 붙잡고 살지도 모른다. 첫 2주는 마냥 재밌었는데, 친한 친구도 떠나고 여행이 길어지니까 뭔가 일이나 공부나, 하기 싫은 의무적인 것들을 조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클래스 101 정기권이 있는데 수업을 좀 듣던지, 영어 공부라도 좀 뒤적이던지 해봐야겠다.


나는 완전한 시간 가성비충이라, 15일 다녀와서 책 쓴 분도 있는데 뭐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이게 얼마나 큰 콘텐츠인데, 설산에가서 요양하면 꼭 여행 사진과 내용을 정리해야지. 한동안 노트북을 잡고 있을 요량이다. 원래 까페에서 깨작거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것도 바쁜 일상을 쪼개 가는걸 좋아했나보다. 여기서는 그냥 핸드폰 보고 놀게 되지, 따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게만 된다.


놀면서 생산적인 일을 꼭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마저도 문제가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마음이 그러고 싶다. 사람은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지, 또 바쁘고 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숙소를 옮기니까 외로움에 대한 마음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혼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냥 즐겁던 2주간의 내가 너무 그립다. 하지만, 이 과정도 배워가는 거겠지. 오우, 삶은 어떤 메세지를 나에게 주려고 이러는 걸까요.


겉으로는 잘 다니는거 같이 보이지만 실은 개판이라는 나의 고백에, 음악가 한명이 디엠을 했다. 본인도 노래할때 꼭 그렇게 느낀다고. 밖에서는 멋지게만 보이던 사람도 그런다. 나도 그렇다. 수많은 개판의 순간을 넘겨 좋든 말든 뭔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아침에 다른 친구의 연락에서는, <위로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보면 예술가들은 나같다고들한다. 도전적이고 모험적이다보니 고난이 많은데, 다 본인스타일로 이겨낸다고. 꼭 읽어봐야지. 주변에 그런 사람들만 많아지면 좋겠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너무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무 독특한거 같다. 그래서 이 세계, 저세계가 모두 힘든거지. 사회화가 너무 되었는데 또 온전히 되진 않은 사람의 슬픔이랄까. 회색지대에서도 어쨌든 나아가고 있다. 그게 중요한거라고 믿으면서. <위로의 미술관>, 저 책이 꼭 내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술가가, 예술가 사이에서는 아마추어인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루종일 생각한만큼 표현할수가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나봐. 글이 끊기지가 않는다. 남편은 생각보다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 그도 출퇴근이야 쉼이야 그만의 삶이 있으니까. 나도 여기서 한눈팔지 않는다. 원래 이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건지, 그런 호기심마저도 들지가 않는다. 물론 친절한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설레거나 하지는... 참 건강한 관계야. 나는 삶에 추구하는 자극이 많아서 이성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건가? 싶기도 하다. 쉽게 설레는 성향의 사람도 분명 많을텐데.


여기서는 여행객들이랑 여행객끼리 아주 쉽게 친해진다. 제발 오늘 투어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또래가 참 많았는데, 아르메니아에서는 부부나 커플이 더 많이 왔다. 나는 외국인치고는 약간 내향적이면서 매너좋고 깔끔하며 말이 없는 사람을 선호한다. 사실 저번 그 친구 스타일이 꼭 그랬다. 그 친구도 나를 선호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동네는 투머치토커가 너무 많아서 정말 쉽게 기빨리기도 한다. 외국어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리액션이랑 억양도 크기에 눈마주치면 웃는 정도의 소통이 제일 좋다. 삶이 또 인연을 내려주시겠지.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후에는 이제 하루에 몇 개씩 감사한 것들을 남기려 한다. 이제 현지식도 잘 먹고 빡세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컨디션이 안좋아서 며칠 푹 쉬었기 때문에, 조금 심심하기도 했다.

1. 아직 가보지 않은 데이투어가 남아있고, 바쁘게 참여할 예정이다.

2. 아직 여행기간이 2주나 많이 남아있다.

3. 글쓰기가 재밌다.

4.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다.

5. 함께 카즈베기에 갈 몽골 언니 동행이 생겼다.

6. 지금까지 한국인 여성을 본 적 없는데, 카즈베기에서 만날 수 있을것 같다.

7. 오늘의 컨디션이 좋다!

8. 잠을 푹 잤다.

9. 곧 카즈베기에 간다

10. 음식량이 많이 줄었다.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잘 살아내보려 한다. 일단 카즈베기 숙소를 좀 찾아야 한다. 저렴하면서 아주 괜찮은 숙소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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