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울진 후포리, 폭신한 이불 사이에서 잠에서 깼다. 3박 4일의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다시 우리가 사는 소도시로 4시간을 달려 넘어가야 할 날. 커텐을 걷으니 내가 전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후포리의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자는 곳을 바꾸는 행위는 늘 새로움과 신선함, 설렘을 준다. 내가 뭔가 다시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과, 드넓히 펼쳐진 대자연과 새벽의 고요함이 섞인 긴장감이 좋다.
여행이란 뭘까, 사람들은 왜 매일 못떠나서 안달인걸까. 3박 4일 여행은 매우 간단했다. 일어나서 새벽에 글을 쓰고, 한바퀴 산책을 나갔다가, 아침을 같이 먹고 오늘의 갈 곳과 숙소를 찾고, 씼고 챙겨 숙소 체크아웃시간에 맞춰 나가고 유명한 명소를 한 두군데 들렸다 3-4시간 차를 달려 다음 숙소에 도착하는 것이다.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고 둘이 드라마를 보며 수다를 떨다가 잠든다.
아늑한 집도 충분히 좋은걸.. 근데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걸 본다. 거기에 관련된 새로운 대화를 한다. 3박 4일간 평소 한 달치, 훨씬 질적인 대화가 오간다. 그 대화속에는 자꾸만 미래가 있다. 뭐 먹을래? 뭐 볼래 ? 간단한 일상대화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걸 좋아하고 어떤걸 하고 싶은지, 지금의 감상은 어떻고 이걸보니 어떤느낌이 오는지, 이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혼자 여행할때는 대화가 아쉬웠다. 그래서 카톡을 키고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고는 했다. 어떤건 쓰면서, 말하면서 구체화되기도 한다. 그러다 허망하게 날아가는 것들도 많지만. 바쁜 일상에 쫒겨 당연했던 것들이 소중해지기도 한다. 간단한 4일의 여행에도 그는 다정함을 잃지 않았고 그간 당연했던 다정함이 새로 보였다. 그를 더 사랑하게 됐다는 말이다.
같이 들고 가도 되는 짐을 굳이 두 번을 다녀와서 혼자 옮겨 놓기도 하고, 내가 씼는 동안 짐을 다 싸놓기도 하고, 숙소를 찾아놓으면 꼭 그 윗단계로 예약을 하기도 하고, 강원도까지 다녀오면서 모든 운전을 본인이 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꼭 들려 사놓기도 한다. 평소에도 눈물나게 다정한 사람이지만, 아 정말 이렇게 까지 다정했었지 ! 잊고 있었고 감사해졌다.
생각해보니 난 친구와 단둘이 긴 여행을 떠난적이 없다. 길어도 일박 이일이고 그것도 몇 되지 않는다. 아예 여러명이서 며칠 떠난적은 있지만 그건 거의 4명내외나 10명내외여서 사정이 달랐다. 계획했던 터키여행이 어그러지고 나서, 친구들과 좀 길게 여행을 다녀올것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건 그간 그런 생각마저도 한 적이 없다는 거다. 한 명을 깊게 알려면 여행보다 좋은 건 없을 텐데. 함께 가자는 친구도 없었고, 내가 가자는 친구도 없었다는게 조금 신기하다.
하긴, 가족여행은 많이 갔어도 총 둘이서 가는 여행을 거의 간 적이 없다. 거의 타지역에서 근무한 아빠랑은 오히려 몇 번 있는데 엄마랑 둘이 간 적도 없으니. 결혼 전 한번 가자고 약속을 잡았었는데, 엄마가 다른 약속이 잡혔다며 취소하기도 했다. 긴 연애의 영향으로 지금 남편과 제일 많이 간 셈이다. 누군가와 길게 많이 떠났다면, 그 사람을 잘 아는 계기가 되었을텐데. 지금 생각하니까 아주 아쉽다.
살다보면 누구나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과 오래 대화를 하면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머리속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과 꼭 여행을 떠나고 싶다. 새로운 걸 보면서 새로운 대화를 하면 우리의 대화는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까. 아늑한 까페에서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그것 자체도 좋지만 뭔가 아쉬워진다. 꼭 여행이 며칠이 아니여도 좋다. 여자든 남자든, 여럿이든 아니든. 살짝들으면 굉장히 외설적인 제안이지만, 정말 대화로만 가득한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다.
국토대장정, 워크숍, 해커톤..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에서 참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은 초면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서슴없이 본인의 삶에 대해 털어놨다.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많이 다녔던건 굉장히 좋은 일이였고, 기회가된다면 지금도 참여하고 싶은 일이다. 난 대화하는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주제에 대해 대화하는걸 더욱 좋아한다. 한 주제에 관심있어 모인 프로그램에서 대화꽃은 매번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일도 쉬고, 조금은 낙낙한 요즘. 더 알고 싶은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 가까운 곳만 가도 평소와 다른 대화가 오가고 난 그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해외까지 가면 새로운 경험들이 더해져 더 좋지만, 그렇게 시간을 뺄 수 있는 사람은 늘 한정적이니까. 얇게 알던 사람들을 깊게 알고 의식이 전환되는 순간들이 좋다. 이런면도, 이런 생각도 있었구나. 사람을 안다는건 참 재밌는 일이니까.
아무래도 난 여행이라는 하드웨어보다는, 대화라는 소프트웨어를 훨씬 좋아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