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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Jan 30. 2024

T의 사회성

한달에 한번, 30대여자 4명이서 다양한 수다를 떠는 독서스터디를 간다. 직업도,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모두 캐릭터가 개성있다는 점이 같다. 책 이야기로 시작한 수다는 신년목표로, 또 원가족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 곳에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은 모두 지금의 가족과 원가족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혼자서도 잘만 지낼것 같던 20대에는 보통 내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친구의 형제가 몇인지, 부모님이 어디 사는지는 들어본적도 없던거 같고, 들었어도 보통 관심이 없다. 내가 한 것, 내가 할 것, 내가 성취하고 싶은것, 내 연애.. 등등을 얘기하느라 바쁘다. 20대때 친했던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딱 그친구까지가 생각난다. 조금 더 넓으면 그 친구의 남자친구까지.. 


그런데 30대가 되고 이런 저런 티타임을 가지다보면 가정 이야기가 많다. 특히 깊은 이야기의 끝에는 꼭 원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원가족이 이랬는데 나는 이게 너무 고파서.. 원가족이 이래서 난 이게 당연한지 알고.. 원가족은 사람의 기준을 가지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 두가지 타입이다. 부모가 너무 무언가를 부족하게 해줘서, 난 절대 그러지 않아야지 하고 사는 경우와 부모가 뭐를 너무 좋게해줘서, 나도 꼭 이걸 이렇게 하며 살아야지 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렇다. 나는 원가족들이 모두 체력이 좋고 아주 부지런하다. 다들 새벽부터 일어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저녁 일찍 잠든다. 건강한 삶이 반복되다 보니 당연히 건강하다. 그래서 난 살면서 무언가를 하려 할때 체력을 고려한 적이 없다. 의지가 100이면 당연히 노력 100을 쏟아 성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서 운동이 선택인지 몰랐다. 당연히 일하는 것처럼 평생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알고보니 아니였다. 누군가는 노력 100을 할 수 없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걸,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누군가에게는 운동과 체력이 후순위라는 것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친구들은 아무리 어리숙해보여도 계산이 빠른 경우가 많고, 부모님이 경제적인 부분에 쪼들리며 사는걸 보고 큰 친구들은 돈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은 사실 사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에는 다양한 경험의 총합이 있다. 대화하다보니 우리도 이게 신기했다. 몇년 전만해도 내 노력으로 뭐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영향받는 게 이렇게나 많았다니. 그래서 아예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인식을 깨뿌시는 경험을 많이 해야하나보다.


다른 사람들과 원가족까지 꺼내는 깊은 대화를 하다보면, 와- 세상에 진짜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싶어진다. 다른 사람의 면면만 보면 이해하기 힘들때가 많은데, 또 이렇게 컸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인과를 살펴보면..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한 타인은 다른 이유가 있었을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죽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것만 같기도 하다. 서로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게 사회지 뭐.


사회는 원래 불편하고, 인생은 원래 바쁘고, 타인은 원래 힘겹다. 아니 항상 세상이 맘에 드는 옵션만 있을리가 없지. 가끔은 나 자신도 너무 힘겨워 휘청거리는 판국에. 인생이 너무 바빠서.. 사회는 불편해서.. 타인이 힘들어서.. 뭔가 피하려고만 하고 징징대는건 어차피 의미가 없다. 아니 어릴때부터 본 가족도 온전히 편하지 않은데 어떻게 수많은 구성원이 모인 사회가 편하겠어. 그저 이런 타인도 있구나, 저런 타인도 있구나 내가 이해하는 것 뿐. 누군가를 바꿀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자기가 너무 바빠서 뭘 못하고, 컨디션 조절을 못해서 뭘 못하고.. 이런 변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에 컨디션 조절이 쉬운 사람과 너무 바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 그럼에도 컨디션이 더 좋아지려 시간내 운동을 하고, 전날 일찍 자고, 변수를 줄이는거지. 시간은 24시간으로 다 똑같은데, 누구한테만 많고 누구에게만 적을리가 없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처음부터 파악해서 그것만 행하는게 지혜로운거다. 다만 타인보다 그게 더 힘든 사람은 있겠지. 그리고 당연히 모두가 지혜로울 수 없겠지. 그럼에도 사회에서는 '이해'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거겠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같이 가는 것들이 있어야겠지. 그들도 또 내 다른면을 분명 이해하지 못할테니가까. 나도 지혜롭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을테니까.


누군가는 이런 내가 너무 냉정해서 무섭다고 한다. 냉정하다라.. 생각은 냉정할 수 있지만, 표현은 다정하게 하려고 한다. 내 기호는 이런게 확실하지만, 모든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이 기호를 내비치진 않으려 한다. 이해가지 않지만, 굳이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일로 묶여있는 부분이 아니라면 꼭 내 기준을 들이밀 필요도 없고, 굳이 지적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어느 부분은 지혜롭고, 어느 부분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게 사회가 아니던가. 남들도 내게 분명 여러번 참았겠지. 아니라 생각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은게 많겠지.


이게 T의 사회성일까. 내가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서 모든 사람에게는 더 향상되었으면 좋겠다는 면과 아주 좋은 장점이 보인다. 아주 단점이 강한 사람이라도, 난 그 사람이 수용되는 환경이니까 그런 성격을 가지는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다정한 내 친구는 남들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난 아주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직 먹고살만하니까 그런다고 생각한다. 망해보면 알아서 정신을 차릴꺼라고도 생각한다. 굶어죽기전이라면 누구나 뭐든 해보려 할 테니까. 


그러니, 내가 느리고 실행력이 약하다면, 그건 또 내 환경이 충분히 안락하다는 말도 된다. 급하거나, 당장 아쉬운게 없어서 그런거다. 세상에 간절한 동기를 이기는 것은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감사할 거리가 아주 많은 것이다. 그러니까 난 요즘 내 삶에 더 감사해야겠다. 빠르게 움직이고 싶어서 동동댔는데, 사실은 별로 빠르지 않아도 지장없는 삶이니까. 아, 이게 T의 긍정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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