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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Nov 27. 2021

2주간의 감기몸살

과제 2개 이야기 

1년에 병원을 몇 번 가지 않을 정도로 평소 건강한 편인데 이번에 감기몸살이 꽤나 세게 왔다. 살면서 이렇게 감기를 지독하게 걸린 적이 없어, 감기 몸살 인지도 몰랐다. 목이 살짝 칼칼한데 그러려니하고 수영장을 갔다가 다음날 새벽부터 기침하느라 자꾸만 잠에서 깼다. 검색해보니 감기 기운에 수영장은 쥐약이라고 한다. 아이고 두야.


당장 수영을 쉬고, 병원에 가서 약을 타 왔다. 오후면 금방 낫고 내일이면 수영장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이 무색하게 목과 코는 꽉 막혔고, 머리는 아팠다. 약기운인지, 감기 기운인지 몽롱해졌다. 이미 일정이 잡힌 일들이 꽉 차 있기에, 푹 쉬지는 못했다. 평소 1시간 걸릴 일들이 3시간은 걸렸다. 이것저것 제대로 완성이 된 건지, 만 건지도 모르게 살펴보고는 제출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걸려오는 전화마다 심하다며 괜찮냐 물어왔다. 안 되겠다. 웬만한 일정들은 모두 취소하고, 이틀을 내리 잠만 잤다. 엄마에게 티포트를 하나 받아와 따뜻한 물을 계속해서 내리고, 이것저것 차를 타서 보온병을 가지고 다니며 휴대했다. 그래도 감기는 전혀 나을 생각이 없었다. 한번 기침을 하면 몸속까지 뒤틀렸다. 머리는 계속해서 무거웠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오, 이제야 바쁜 일들이 좀 끝나 몇 가지 이벤트가 있는 주인데. 하필이면 대학 과제 기간이었다. 이미 바쁜 일정에 토론 하나를 그냥 보내버린 후였다. 다른 건 몰라도 과제는 해야 했기에, pc를 켰다. 이번 주에 2개, 다음 주에 2개가 마감이었다. 다음 주에는 감기가 다 낫겠지. 문화예술경영학과와 한국어문화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기에 과제는 결도 많이 달랐다.


먼저 원가족 역동 분석하기를 했다. 상담수업인데, 사티어 모델로 가계부를 그리고 우리 가족의 관계들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4인 4가구에 각자 다 전화를 해서 개인정보를 물어봤고, 다들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했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화만 했을 뿐인데 기력이 다 쇠했다. 원가족의 나이, 종교, 가치관, 성격 등을 나열하다 보니 우리 가족은 의외로 큰 틀이 다 비슷했다. 그래서 관계도 별 갈등 없이 무난한 걸까.


a4로 몇 장이나 가족 간의 관계들을 적다 보니, 이렇게 원가족을 심도 있게 분석해보는 게 처음이라는 게 떠올랐다. 특히 독립을 하고 나서 각자 살다 보면 원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일이 많이 줄어든다. 뭐 눈에 보여야 마찰도 있고, 함께 하는 것도 있는 법인데.. 난 엄마와 아빠의 성격을 짬뽕해서 닮았고, 내가 짬뽕해서 가져가지 않은 부분들은 동생이 가져갔다. 1+1은 2구나. 나랑 동생도 어떻게 이상하게 조합돼서 2가 되었다.


상담수업을 듣다 보면 어릴 때 형성된 원가족과의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나는 운좋게 잘 사랑받는 유년시기를 보낸 것 같다. 이제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직전이라, 새로 만들어진 가족에 대한 관심이 더 간다. 아이를 낳으면 유년 시간에 함께 오래 집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나라가 먹고살만해지면서, 심리나 내적인 면이 중요해진다. 아, 이번 마을 만들기 사업에는 용기 있는 마을을 주제로 제시해볼까. 생각이 자꾸 튄다.


두 번째로는 서평을 작성했다. 한국의 전통문화수업을 김문 교수님에게 듣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교수님이자 나를 힘들게 하는 교수님이다. 먼저 좋아하는 이유는, 이 교수님은 수업을 되게 재밌고 하고 내가 잘 몰랐던 한국의 전통들과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자꾸 제시해준다. 그니까 본인이 말한다고 맞는 게 아니고, 개개인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래서 뭔가 감동을 받고, 아 해봐야겠다!라는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힘든 이유는, 일단 한국 교육에 익숙한 내가 뭔가 내 시선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자꾸 생각하는 것 위주로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반가사유상 국보 78호와 83호를 a4 몇 장이 넘게 비교해본 적이 있는가? 비슷한 시험을 본 경험이 있다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하필 컨디션도 안 좋을 때에, 김문 교수님의 서평을 써서 내야 한다니.. 내심 이 수업은 꼭 잘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일단 전통에 관련된 아무 책이나 서평이 가능한데, 나는 한국의 전통성에는 모두 관심이 많지만, 정원과 전통주중에 어떤 것으로 서평을 쓸지 고민하다 전통주를 골랐다. 일단 전통주는 수업 내 한 번도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고, 매 술자리에서 꼭 막걸리를 고르곤 하는데 솔직히 앞으로 술자리에서 아는 척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술 입맛을 좀 고급지고 깔끔하게 바꿔볼까 싶기도 했다. 


이현주 저자의 <한잔 술, 한국의 맛>을 골라 재밌게 읽었다. 지역별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술도, 아예 모르는 술도 나왔다. 에비앙이 왜 비싸고 유명한지 아는가? 에비앙은 생수가 아닌 약수로 스토리텔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비싼지도 모르고, 그저 비싼 물로 더 유명해졌다. 전통주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 들어보긴 했지만 나는 왜 유명한지도 모르고, 명절에 사서 어른들께 선물하고 있었다.


전통주에 대해 읽기 쉽고 세련되게 잘 풀어헤친 글이다. 특히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 홈브루잉, 그러니까 집에서 술을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김치처럼, 집마다 맛과 향이 각자의 개성으로 달랐을 것이다. 그 많은 술 비법들이 사라졌다니 정말 애석한 일이다. 수제 막걸리와 맥주 담그기 키트가 유행이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전통주 제조가 다시 유행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와인을 고급진 술로 인식하지만, 과일을 술로 담그는 것보다 곡물을 술로 담그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통주 이야기들을 보면 굉장히 정성과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수량이 넘으면 그 해에는 구매할 수 없는 전통주들도 있다. 전통주를 기반으로 한 칵테일들도 많다고 하니, 지금은 고급 호텔에서나 가끔 만날 수 있지만, 곧 고급진 느낌으로 대중들이 많이 인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평에 거의 반은 독후감 느낌으로 나름 느낀 점과 생각한 점을 많이 적어두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 깊숙이 쓰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썼다. 나는 늘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이 것은 잠도 안 자고 밤을 새우는 최선이 아니라,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최대한 집중을 하고, 나만의 생각을 새기는 최선이다. 또 최선을 다해서 잘 쉰다. 휴식을 잘 안배하는 것이 분명 최선으로 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두 개의 과제를 하고 쓰러져 잤다. 감기몸살로 아프니, 조금만 집중해도 머리가 자꾸만 아팠다. 그래서 1개 하고 조금 쉬고, 또 하다 조금 쉬고, 쉬엄쉬엄 다 하고는 낮잠도 자고 다른 일도 하고, 이렇게 반복했다. 머리만 안 아파도 좀 살만했을 텐데. 나이가 아주 많이 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래도 쉬엄쉬엄 하면 된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자주 쉬어도, 꾸준히 걷기만 한다면 언제든 정상은 만난다.


성격이 아주 급한 편인데, 이렇게 쉬엄쉬엄 이주를 보냈더니 딱 오늘 아침 컨디션이 좋아졌다. 아직 목과 코는 살짝 가래가 껴있는 듯 하지만, 머리가 아프지 않고 뭔가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매사 흐리던 구름이 걷힌 듯 스스로 반짝하는 순간이다.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고, 별 일이 다 생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천천히 할 일을 하고, 평소의 나에게 감사해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스스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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