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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Feb 06. 2024

일 안하고 집에서 쉴 때 하는 것들

오늘도 열심히 움직인다

왠지 피곤한 저녁, 도서관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도 딱히 글감이 없길래 택이에게 하나 추천해주라고 했다.‘일 안하고 집에서 쉴 때 하는 것들’ 이라고 단박에 카톡이 온다. 오, 괜찮은데. 오늘은 이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한다.


사실 난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을 꽤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인지, 아님 성격과 맞는 일을 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돈으로 얻는 성취감은 별로 없었고, 이제는 내가 홀몸이 아니라 가정과 아이가 있는 사람이 되어 당분간 직종을 바꿀 계획이다.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로써 커리어를 쌓는 문화기획은 꾸준히 하겠지만.. 이제 돈으로 얻는 성취감을 욕심내보려 한다. 뭘 하던 기존의 기획 일에서 배운 일들이 영향이 있긴 하겠지.


아이를 가지고, 마침 계약도 종료될때라 일을 쉬게 되었다. 여기저기 계약직으로 일하던 차라 집에서 쉬는게 낮선 일은 아니였다. 공부하고싶은거 하고, 놀거 놀고 하다보면 자연스레 또 새로운 일에 대한 제안이 오곤 했었다. 지금은 가정보육을 3년정도 욕심내고 있어, 생각보다 일을 안하는 시간이 길어질 예정이다. 직장으로 따지면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이후부터는 집에서 할수있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할 예정이다.


백수가 된지 3개월차, 일 안하고 집에서 쉴때 하는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사실 아주 바쁘다. 난 완전히 외향파라 집순이 스타일은 전혀 아닌데, 또 혼자있는 시간도 중시 여기는 편이다. 집순이도 집에서 정말 누워서 쉬는 택이같은 사람이 있고, 집에서도 이것 저것 하느라 바쁜 집순이가 있다고 한다. 난 기본적으로 잘때가 아니면 자리에 눕지 않는다. 티비도 주말 저녁에나 볼까 말까 하는 편이다. 집에만 있어도 하루가 후딱 갈 정도로 바쁘다.


일단 주로 새벽에 일어난다. 알람에 맞춰 일어나면 바로 수영갈 채비를 챙겨서 수영을 하고 온다. 더 일찍 일어난다면 책을 읽다가 수영을 가고, 주말에는 일출 전까지는 책을 읽다가 일출이 밝아올때쯤 산책을 나가 한시간쯤 걷고 온다. 오전에는 여러 레슨을 듣는데,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미싱 레슨을 다녀온다. 요즘은 겨울 코트를 만들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늦어서 걱정이다. 목요일에는 아뜰리에를 가서 그림을 작업한다. 올해도 공모전 2번과 단체전 3번이 날 기다리고 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다른 일정이 따로 없는데, 곧 수요일 오전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예정이다. 안그래도 칠 수 있는 악기도 없는데, 하도 안 쳤더니 이제 좋아하는 곡들도 못치겠다. 일정이 없는 오전에는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거나, 옷을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한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점심약속을 잡는다. 아는 사업장이 있으면 차마시로 구경도 가고, 누군가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바쁠때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난다. 그래서 수다를 실컷 떨고, 맛있는걸 실컷 먹고, 깔깔 웃다 온다. 요즘은 임신했다고 여기저기서 밥을 사는 통에, 얻어먹느라 바쁘다. 아, 기존에 누군가 친구가 임신했을때 나도 이렇게 밥을 사고 다녔었나? 사실 별 관심 없었던거 같다. 그래도 만나보면 다 내가 선물은 몇 차례했다고 한다. 역시 내가 닥쳐봐야만 아는 세상들이 있다.


오후시간은 거의 통으로 빈다. 이상하게 하루 중 오후가 제일 기력이 없다. 그래서 보통 낮잠을 자고, 쉬면서 할 일을 한다. 이번달부터는 해빗트레커를 작성하고 있다. 하루에 브런치 글 1개, 블로그 글 1개,  영어와 중국어 공부 1챕터씩, 그림작업 1개씩, 독서는 꼭 하려고 한다. 이런 나만의 과제들을 하는 시간이다. 사실 다 매일 하지는 못하지만. 저녁에 요가가기 전에 어쨌든 해야하는 일들이니까 일을 한다. 하다가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를 실컷 떨기도 하고, 다른 글에 빠져 한참 인터넷 서핑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설거지를 매일 한다. 또 클래스 101을 뒤적거리며 관심있는 분야를 공부해본다. 사실은 이런것 말고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건지도 찾아봐야 하는데, 요즘은 게을러서 전혀 그러지 않고 있다.


저녁 7시에는 요가를 간다. 이번달부터 화요일에는 3D 프린터 수업을 들어서 모델링을 배운다. 저녁에 약속이 있거나 교육이 있으면 오후 3시에 요가를 가면 되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요가를 안가고 낮잠을 자는걸 선택했다. 요가를 다녀와서 피곤하면 책 좀 읽다가 곧 잠에 들고, 피곤하지 않다면 오늘 하지 못한 과업들을 한다. 평일의 루트는 거의 이렇다. 쉰다기보다는 하루종일 해보고 싶었던 공부들을 하는 느낌이지만, 일을 다니지 않는다면 하루가 꽤 길고, 뭘 하지 않으면 성취감을 느낄 일이 없다.


주말에는 도서관도 잘 열지 않고, 운동도 없고, 친구들도 더 바쁘고, 더 시간이 남아돈다. 오전에 운동을 다녀오면 보통 옷을 만든다. 원단 서랍에서 원하는 원단을 고르고, 블라우스를 하나 만들고 나면 또 일주일간 입을 옷이 생긴다. 임신기간에는 배가 나와 만드는 디자인이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뭘 만들든 꽤 유용하다. 만들다 보면 에너지가 많이쓰여 배가 고프다. 그럼 간단히 밥을 먹고, 옷을 다만들고 나면 자리를 정리하고, 거실을 청소하고 보통 낮잠을 잔다. 자고 일어나면 오후 세네시가 훌쩍 넘어있고, 이때는 주로 편안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밤 늦게 영화나 애니매이션을 틀기 전까지는 자유시간. 또 주말이니까 간식을 더 먹기도 하고, 특별히 맛있는걸 먹기도 한다. 그냥.. 혼자서도 기분 내는거다.


자유시간이래도 놀 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은 비슷하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영어나 중국어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공연이나 전시가 있으면 보러 가거나. 이것 저것 할것들도 질리면 도서관이나 까페에 가서 또 이런것들을 하거나, 아니면 친정에 놀러가 자고 온다. 부모님도 주말부부인데, 우리는 참 대화를 많이하고, 각자의 삶이 내내 바쁘기에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온다. 그러면 충전이 되서 다시 무료한 일주일을 잘 버틸 수 있다.  


요즘은 참 일하고 싶다. 일을 할때의 성취감도, 월급도, 소소한 수다들도 그립다. 일을 하지 않으니 확실히 스트레스가 없어서 배뭉침도 한 번 없고, 컨디션도 너무 좋기에 아기를 위해 진짜로 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은 사업을 준비한다면서 어째 그게 준비가 되는 유형의 것인가. 그냥 이것 저것 들춰보는 정도다. 누구는 일을 쉬고 싶어 안달이라는데, 참 이것도 복이다 싶으면서도 복도 원하는 사람에게 와야 복이다 싶기도 하고.. 그냥 세상이 내게 주어진 시기가 이럴때인거다. 어떤 조건이든 감사하며 노력해야지.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바쁜데 뭐가 그렇게 심심하냐고 묻는다. 그러게, 나도 그게 참 궁금하다. 농부집안에 태어나 부지런함이 당연하고, 하루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많은 걸 하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서 일까, 오랜 운동으로 체력이 너무 좋아서 일까, 아니면 그냥 욕심이 많아서일까, 혹은 이 모든 활동이 돈이 안되서일까. 난 모두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쌓아지다보면, 해보다 보면 언젠가 내 넓은 그릇이 채워지게 되겠지.


난 일안하고 집에서 쉴 때이렇게 많은 것들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심심해하고, 만족하지 못한다. 일을 다니지 않는 하루는 너무나 길고, 결과가 보이지 않는 성취들은 날 지루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때가 내게 온 이유가 있겠지. 오늘은 오늘 내 입장에서 내게 떠오른 생각과 방법대로 최선을 다 하려 한다. 이게 태어났음에 감사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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