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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pr 01. 2020

처음에는 모두 수학이다.

브런치 글쓰기에 관한 박약독백

 어릴 때부터 표출욕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꼭 말해야만 하는 성격처럼, 뭔가 떠오르면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잠에 들 수 있었다. 마침 손재주도 좋고 부지런한 내가 다양한 장르들을 손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는 그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성인이 되고는 자연스럽게 글로 옮겨갔다. 처음에는 사적인 공간에 글을 쓰고는 했다. 글을 쓰다 보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흘러가는 내 감정의 정확한 꼭짓점을 들춰내게 되었을 때는 희열을 느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가끔 브런치에서 에디터들의 인터뷰를 읽고는 한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뭘까? 한 달 평균 10-20권을 읽을 만큼 독서를 좋아하지만, 그게 곧 글을 잘 쓴다는 반증은 아닐 것이다. 나는 독서를 오락으로 생각해서, 장르는 다양하게 읽지만 좋아하는 형식이 담긴 글을 주로 읽는다. 실물로 읽는 책에서 가장 안 읽는 장르가 에세인데, 내가 내 생각을 서술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 참 신선한 모순이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도 몇 번 읽어봤는데, 난 텄다는 것만 느꼈다.


 브런치는 그냥 내가 쓰는 글과 다르게 남들이 읽는 글이다. 그래서 글을 기획하고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조언이 굉장히 많다. 4명의 구독자들에게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난 텄다. 나는 원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랑도 받겠다는 욕심 많은 캐릭터다. 그게 이상하게 삶을 살면서 잘 먹혀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소개글과 다르게, 그냥 내 생각과 관점,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소재로 삼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몇십 명처럼 다양하지 않다는 게 그나마 주제의 일관성에 가까운 변명일까?


 글을 많이 줄이고, 쉽게 쓰라는 조언도 상당하다. 이것 또한 텄다. 평소 독서도 좋아하지만, 웹으로도 줄글 읽기 기반의 활동을 많이 하는 나는 어휘량이 넓다. 그리고 다양한 단어를 쓰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그냥 하늘이 파랗다가 아니라 푸르스름하다 퍼렇다 푸르다 등등 세부적으로 날카로운 단어를 쓰는 게 좋다. 또 변명을 하자면, 주변 문창과 친구가 내 글은 가독성이 좋다고 했다. 주변의 유일한 글에 관련된 전문가이니, 이게 쉽게 쓴다는 칭찬이 아닌가, 오독해본다.


  브런치 출판인가 매거진인가 뭔가 나도 해보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지만, 지금은 잘 쓸 때가 아니다. 그냥 많이 쓸 때다. 최근 프랑스 자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항상 생각하지만 뜨개질과 자수는 수학이다. 공식이 있고, 그 공식에 맞춰서 하면 분명 그대로 나와야 한다. 원하는 모양이 안 나왔다면 100% 나의 잘못이다. 그 공식이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창작을 하면 된다. 예술성과 창의성은 바로 그때 필요하다.


 살면서 모든 일이 처음엔 수학인 듯싶다. 한글을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듯이. 나도 브런치에 일단은 많이 써야 한다. 감사하게도 이 글쓰기 플랫폼은 통계가 잘 나온다. 어떤 글이 조회수가 높은지, 라이킷이 높은 지는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초 데이터가 없이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요즘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조회수에 비해 라이킷이 낮다. 다음에서 유입률이 높다. 아마 제목이 매력 있어 들어왔는데 너무 장문이라 끝까지 안 읽는 사람이 반은 될 거다. 괜찮다. 자칭 예술가 성향을 지닌 나는, 충분한 기초 데이터에 기반한 통계를 봐도 그렇구나- 하고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쓸 것이다. 보이는 면에 신경 쓰지 않겠다면서 보여주고 싶어 이러한 플랫폼에 연재를 하는 모순의 패러독스다.


  그 수학에서 지치지 않으려 한다. 지속적인 시간을 내서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다양한 장르게 도전하며 배운 점은, 그 수학을 인내하는 길이였다. 인강이 몇 강이 되든 일단 완강은 한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마감을 정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성을 목표로 둔다. 막상 손을 대면 하나를 하더라도 잘해보자는 일념 하에 퀄리티가 올라간다. 첫 번째 수학은 어렵지만, 갈수록 수학 자체에도 익숙해진다. 브런치에 쓰이는 나의 글도 분명 그러리라 믿는다. 나는 수학이 아니라, 그 후 창의성에 강점이 있다. 그래서 수학을 견뎌야 한다.


 브런치 에디터의 글을 읽다가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플랫폼에 대한 짧은 소개를 읽었다. 신선한 개념이다. 작가의 빛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플랫폼이 어둠이 되다니. 고안을 누가 한지는 몰라도 통찰력이 있다. 본인을 브랜딩 하지 않는다. 가짜 홍보와 오버 마케팅이 판치는 요즘 세상에서 오히려 궁금한 재질이다. 플랫폼에 가담한 입장으로 정말 본질을 꿰찼다고 할 수 있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은 막상 보면 심플하면서도, 스스로 떠올리기가 참 어렵다.   


  한 가지를 뾰족하게 잘하는 사람들은 멋지지만, 내 성향상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다양한 것을 연계하는 데에 더 강점이 있다. 내 글은 어딘가 찌그러지고 뭉툭하지만 신선한, 그래서 더 정감 가고 매력적인 글이면 좋겠다. 내 글을 보다 누군가 '어 나도 써볼까? 할만한데'라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의 찌그러진 콘텐츠들이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나도 다시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를 보고 연계해서 재밌는 무언가가 나오고 이게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찌그러진 세계의 선순환을 바란다.  


  사실은 나는 사람들이 글이 아니라 나를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사랑받고 싶지만, 양보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매 번 새로운 대안을 내놓고, 실험적으로 해보자고 조른다. 그런 성향도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에디터들의 글을 읽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이 한 발짝 밀리는 것 같을 땐, 내가 작성한 수많은 기획서 초안을 떠올린다. 전문가의 피드백이 있을 때마다 다 갈아엎지만, 그럼에도 기준점이 되기에 꼭 필요한 골격이다. 수정에 수정을 거쳐 결국 마감일에는 짜임새 높은 기획서가 된다. 그래서 전문가의 피드백은 꼭 필요하고, 수많은 수정은 운명이다. 책을 낼 때는 분명 더 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내 책은 완벽에 가까울 거다.


 그러니 지금은 열심히 수학하고 꾸준히 쓰겠다. 내 관점에서 사회를 더 둘러보고, 본질적인 통찰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 모든 과정을 부담 가지지 말고 즐겨야겠다. 내 창작물이 나온다는 건 꽤나 흥미롭고 자부심 있는 일이다. 이러다 글에 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면 받고, 관련 강의가 있다면 보기도 하면서 천천히 기초 데이터를 쌓으면 된다. 내 일상을 꾸준히 기록한다면, 나중에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유쾌하게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꺼내는 글은 그래서 좋다.


결국 내가 가장 원하는 독자는 미래의 나인 것이다. 그래서 꾸밈없이, 있는 것들을 소소하게 적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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