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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Feb 22. 2024

임산부는 공공재인가

과한 관심은 스탑!

어느덧 임신 8개월차에 들어섰다. 원래 키나 체격이 큰 탓에, 혹은 아직 배가 별로 나오지 않은 탓에, 혹은 첫 애인 탓에, 혹은 딸인 탓에, 혹은 아직 겨울인 탓에..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임산부인지 대부분 알아채지 못한다.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 위아래층 이웃들을 만나면 5월초에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니 소음이 있다면 말해주라고 한다. 대부분의 대답은 “지금 임신하신거예요?” 라고 대답이 들려올 정도.


여전히 아침에는 수영, 저녁에는 요가를 다닌다. 주에 미싱레슨을 2번가고, 아뜰리에도 한 번 간다. 자주 파티에 참석하고, 앞으로 꽤 오래 보지못할 친구들도 만난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한다. 경험에 따른 이야기, 들리는 이야기, 요즘 아이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


그 사람들은 한 번이겠지만, 나는 하루종일 아이에 대한 이야기만 듣는다. 오늘은 하루종일 밖에서 시달렸더니 진짜 기가 빨리고 물려서 운동도 못갈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나는 임신을 한 상황이지만 지금 열심히 작품활동도 하고, 코트도 만들고, 글도 쓰고 있고, 신혼이기도 하다. 나는 나로써 존재하고, 주변도 제발 그렇게 좀 봐주면 좋겠다. 내 컨디션이 안좋으면 내가 알아서 얘기하거나 약속을 무를텐데, 자꾸 묻고, 묻고, 묻고.. 아 너무 과해.


모임 약속이 있다가 한 명이 아프면 임산부가 있기 때문에 감기철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약속이 파한다. 물론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줄 알지만, 가끔은 어이가 없다. 나는 임신을 하고 단 한번도 감기에 걸린적이 없는데, 본인이 컨디션 조절을 못한걸 왜 임산부탓을 하면서 전체 약속을 깨고, 다들 동조하게 만드는지. 심지어 나보다 컨디션 조절도 못하고 있으면서.. 내가 컨디션이 안좋으면 알아서 빠질텐데, 늘 쉬운 변명거리가 된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먹힐리 없다. 이런게 반복되니까, 마음 속으로 내적 손절만 쌓여가고 있다. 미리 뺀 내 시간에 대한 존중은 다 어디로 가는거야.


정말 신기한건, 내 아이가 곧 태어나는데도 타인의 임출육이 단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거다. 묘사 가득한 출산의 고통에 대해 한참을 떠들고 있는 타인을 보며.. 도대체 나를 겁주는 이유가 뭘까 궁금할 정도다. 내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 원체 미리 계획하는 성격도 아니고, 무감해서 이거저거 신경쓰는 편도 아니다. 출산은 당연히 아프고, 육아는 당연히 힘들겠지. 그러니까 이 이상 궁금한 점이 별로 없다. 아니 산부인과가서 초음파를 보면서 담당의에게도 질문하는 날이 별로 없는데, 주변 사람들의 선경험이 궁금할 리가..


하지만 임산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굉장히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가보다. 난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온갖 tmi와 임신을 하면서 본인이 힘들었던 이야기, 심지어 지금 꽤 큰 아이의 육아이야기까지 속사포처럼 쏟아내고는 결국 낳아봐야 안다는 말로 이야기가 끝난다. 나는 임신을 해서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사람들이 이러는게 더 힘들다. 어차피 낳아봐야 알면, 얘기를 왜 해.. 그렇다고 “내가 알아서 할게요”처럼 차가운 말은 입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부담스러워.


그래서 요즘은 차라히 미혼들이랑 만나는게 훨씬 편하다. 특히 무교인 미혼. 무교인 미혼은 대부분 내 임신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직장 얘기, 삶에 대한 이야기, 야망과 목표에 대한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흐른다. 내가 원하고, 요즘 별로 만나보기 힘든 일상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난 그냥 이런 대화를 하길 원한다.


사람들이 너무 날 배려한답시고, 너무 위해준답시고 하는 행동 모든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타인에게 관심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실 임신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워낙 일부외 관심이 없기도 하고, 사람들이 좀 어려워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오히려 나도 오지랖이 많은 편 아닌가? 싶었는데, 임신한 이후에 아.. 이제 오지랖이구나 라는게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진짜 별걸 다 궁금해한다. 반복되면 너무 지쳐.. 나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임신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을까. 


임산부는 공공재인걸까. 모임에서 임신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그냥 축하한다, 정도 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벌써 기존의 나를 충분히 잃는 느낌이다. 아이는 축복이지. 근데 왜 나와 남편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축복하지 못해 애쓰는지 모르겠다. 진짜로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나는 임신후 생긴 몸의 어떤 변화보다도 이 관심이 제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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