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제왕절개는 힘들지 않았다.
기다리던 첫 아이를 36주간 배에 품었다. 다른건 몰라도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천귀저기는 늘 욕심을 냈는데 천 귀저기는 주변에서 하도 말려 포기한 상태였다. 아이가 원래 머리가 조금 큰 건 알고 있었는데 36주 진찰을 받으러 가니, 2주쯤 머리 크기가 크다며 이번주 내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체형은 길고 말랐다고 했다. 무게도 아직 3키로를 안넘었지만 난 늘 전문가의 말을 신뢰하는 편이다. 그래서 37주 1일으로 날을 잡았다. 요가를 포함한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가는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낳는 당일까지도 아가는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제왕절개라는 옵션은 아예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임신기간 내내 운동과 음식으로 열심히 관리를 한 상황이였다. 체력이 전부고 건강이 전부인 나이가 벌써 되었다.. 가끔은 씁쓸해지기도 했지만 30대가 넘으니 체력의 중요성이 훅 다가왔다. 원래 겁이 없는 편이라 따로 걱정되거나 떨리지는 않았다. 가진통도 거의 없는 상황이였는데, 아침 10시에 병원에 가서 촉진제를 맞으니 살짝 살짝 배가 아팠다. 옆에서 택이가 훨씬 더 떨고있었다.
11시쯤, 바이탈을 살펴보던 담당의 선생님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바이탈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일단 오후에 다시 한번 체크를 해보자고 했다. 목요일날부터 금요일까지, 길면 이틀간의 유도에서 성공하면 자연분만이고 실패하면 제왕절개였다. 워낙 임신했을때도 컨디션이 좋아서 자연분만을 의심한적 없었는데, 몸이 하는 일들은 역시 하늘이 점지해주나 싶었다.
일단 관장을 하자고 해서 했다. 출산의 3대 굴욕이라는 내진, 관장, 제모였는데, 난 셋다 별로 굴욕적이지 않았다. 원래 출산이라는게 우리가 호캉스가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할 순 없는거니까. 그저 아이와 나만 건강하면 될 일이였다. 다만 관장을 너무 오랜만에 해서 관장약을 넣고 5-10분은 참으라는데 2분도 정말 간신히 참았다. 전혀 변의가 없었는데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걸 5분이나 10분 참는 사람은 뭘해도 하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오후 2시, 내가 가진통을 겪을때마다 아이의 심장바이탈이 조금씩 내려갔다. 자궁문도 별로 열리지 않았다. 한참 지켜보던 의사선생님이 아이가 버티기 힘들것 같다고 했다. 제왕절개로 가자는 말이였다. 전문가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나는 준비가 됐는데 아이가 힘들어하다니, 아쉬웠지만 오후 3시로 제왕절개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제모를 했다. 보통 제모를 병원에서 하면 날때 간지럽다고 미리 왁싱샵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나는 중에도 별로 간지럽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와 달리 수치스럽지도 않았다. 간호사님이 조심스레 대하는 것도 느껴졌고, 의료행위라 생각해서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차라히 오전 10시에 와서 고생 덜 하고 제왕절개로 갔다 싶었다. 하반신을 마취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보고 수면마취로 잠시 재워준다고 했다. 택이는 옆에서 나보다 더 떨었다. 태어나 처음 하는 수술이였는데 의외로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것보단 아이가 너무 궁금했다. 특히 얼굴이 많이 궁금했다. 아기는 수술을 시작하고 10분이면 태어난다고 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수술준비로 분주했다. 이 중요한 수술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할 의사는 어떤 기분일까 싶었다. 아이를 태어나게 한다는 사명감이 부럽기도 했다.
수술대에 누워 하반신에 주사를 맞으니 마취기는 아주 빠르게 올라왔다. 택이가 충격먹을 수 있으니 스덴이나 주변에 비치는걸 보지 말라고 했는데 비치는 것도 없었다. 자르는 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그것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흡이 꽤 불편했다. 배위까지 마취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열심히 숨을 쉬었다.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걸 신경쓸 일이 없었따.
한 10분쯤 지났을까, 앵-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이가 태어난거다. 아이를 닦고, 내 품에 먼저 안겼다. 태지가 많이 붙어서 얼룩덜룩한 모습에, 오만가지 상을 쓰고 우느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너무 작고 마른아이. 그래도 한 가지 감정은 확실해다. 너는 너무 작고 정말로 소중하구나. 그리고 이제 내 세계는 너를 지키는데 집중하겠구나. 없던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웠고, 금방 수면 마취로 잠들었다.
일어나니 수술은 마무리되었고 택이는 아이보다 내게 먼저 달려왔다. 후기를 보면 남편은 애기에게 더 집중한다고 하던데, 그는 아니였다. 후에 들으니 배를 열어보니 아이가 탯줄을 감고 있었고, 나는 자궁이 커서 자궁을 드러내 애를 꺼내지 못하고 속에서 꺼내고 꼬맸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출혈이 남들의 2배정도 일어났고, 수술 시간도 꽤 길었다고 한다. 빈혈 수치를 재서 수혈을 받을수도 있다는 안내까지 나갔다. 택이는 그 과정에서 뭔가 꽤 두려웠고 놀랐다고 한다. 물론 나는 몰랐다. 하반신 마취를 잠시 참고, 눈감았다 뜨니 아이가 생겨있었다.
누워서 방으로 이동했다. 수액을 넣으니 몸은 퉁퉁 불었다. 요즘은 무통이 잘되있다던데, 불편하긴 했지만 따로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인생 첫 수술인데, 나는 생명이라도 태어나게 해서 감수할만 하지 다른 수술들은 꽤 서럽겠다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변줄도 차봤다. 제왕절개를 한 당일에는 주사를 아주 많이 맞았다. 수액에 넣은 주사까지 하면 한 20개 맞은것 같다. 와, 사람을 아예 약에 절이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방은 뜨끈뜨끈 더웠고 나는 움직일수 없어 자잘한 손이 많이 갔다. 물 마시는 것부터 폰 하나를 볼래도 택이의 손을 거쳐야 했다. 보호자 없는 수술은 세상 서럽겠구나.. 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는 보호자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했다. 조금 지나니 간호사님이 잠든 아이를 안고 병원에 오셨다. 둘다 안닮은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피부가 정돈되지 않은 아기는 외계인같기도 했다. 통통 불어서 더 그랬을지 모른다. 그래도 정말 작고 소중하다는건 확실했다. 아이를 안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배를 째서 아이를 낳는 정도의 큰 수술인데 생각보다 정말 고통은 덜했다. 정 아프면 진통제를 주겠다는 간호사님들의 말도 믿을만 했고, 무통 버튼을 누르면 무통제가 쑥- 주입되는데 한번도 누르지 않고 수액 주사를 뗐을 정도였다. 요즘은 정말 무통수액이 잘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출산보다 더 힘든건 모유수유라는걸. 다음날 새벽부터 링거지지대를 잡고 복대를 차고는 끼니를 먹고날때마다 복도를 30분씩 걷기 시작했다. 배는 애기뱃살처럼 나와있었지만, 가슴보다는 확연히 작아져있었다. 그것마저도 신기했다.
다음날은 소변을 보고 방귀를 뀌어야 했다. 소변은 잘 나왔는데 방귀가 도통 나오지 않았다. 나는 출산후 고통 보다 오래 배고픈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 고통은 간간히 한번씩 배가 아픈건데, 배고픔은 나를 꾸준히 힘들게했다. 고작 하루 금식이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일단 미음을 받아 먹었다. 받기전에 배고파서 눈이 돌아가는지 알았다. 원래 임신중에는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는데, 하고 나니 바로 배가 너무 고팠다.
방귀를 뀌려고 좋다는건 다 해봤지만 방귀는 자기가 나오고 싶을때 나왔다. 그 담날 자고 있을때 작게 한번, 그다음에 우렁차게 한 번. 제왕절개 뿐만 아니라 모든 수술에서 방귀는 중요하다고 한다. 의료행위에서 고작 이런건 더럽거나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배를 째서 내장도 다 보여줬는데, 고작 방귀쯤이야. 남편과 나는 방귀 하나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때까지는 아이가 태어났다는게 딱히 와닿지 않았다. 실제로 두 번 잠깐 봤고, 아이는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저 신기했다. 와, 내가 엄마가 되다니- 보다는 와, 내가 출산을 하다니-. 정말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군. 정말 신기한 일이야. 싶었다. 자연분만이 아니라 그런지 출산보다는 수술에 훨씬 가까운 느낌이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아이는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