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추억의 음식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좋아했다. 치킨보다는 백숙을 좋아했고 스파게티보다는 잡채를 좋아했다. 라면 하나를 먹더라도 계란에 파에 콩나물에 게에, 모든 해물과 나물이 들어간 라면을 원하고 삼겹살보다는 갈비찜을, 구이보다는 찜을, 부드러운 회보다는 뼈꼬시를 훨씬 좋아한다.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다시마가 김보다 자주 식탁에 올랐다. 난 다시마가 흔한 메뉴가 아니라는 것을 다 커서야 알았다. 흰쌀밥보다 콩밥과 잡곡이 훨씬 익숙했고, 상추보다는 양배추 쌈을 많이 먹으며 자랐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면발이 보이지도 않게 야채를 넣던 엄마 덕에 지금도 친구들이 토끼냐 할 정도로 야채를 좋아한다.
그런데 가장 추억의 음식을 고르라면 아주 간단한 음식을 고르게 된다. 바로 김밥밥이다. 김밥 밥이 무엇이냐면 김밥을 쌀 때 들어가는 양념이 된 밥이다. 방금 막 한 김이나는 밥과 소금, 참기름이 어우러지면 거실에 다 퍼지는 특유의 꼬신 내가 난다. 내가 하면 아무리 해도 나지 않는 맛의 완벽한 비율이 있다.
어릴 때 소풍을 가면 엄마가 새벽부터 김밥 재료를 다듬고 준비해서 꼭 나한테 싸라고 했다. 동생은 늘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고, 엄마와 나는 새벽형이라 새벽 대여섯 시부터 부산을 떨며 준비하고, 김밥을 말곤 했다. 난 김밥 재료를 준비할 줄은 모르지만, 김밥은 꽤 잘 싼다. 김밥을 말다 배가 고프면 김밥 밥을 꼭꼭 뭉쳐 미니 주먹밥으로 먹곤 했다.
그냥도 신이 나는 소풍날 아침, 아빠와 동생까지 모두 거실에 둘러앉아서 나는 김밥을 싸고, 엄마는 김밥 재료를 더 준비하며 부산을 떨던 따스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김밥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꼭 나눠먹으라도 많이도 꼭꼭 눌러 담곤 했었다. 가끔 엄마가 바빠 김밥 사가라고 몇 천 원을 주면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본가에 가면 엄마가 늘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 "그냥 있는 거"라는 말이 태반인데 가끔은 꼭 그게 그렇게 먹고 싶다. "엄마, 그거 해줘. 김밥 밥 주먹밥" 밥만 뭉친 게 뭐 그리 맛있냐며 핀잔을 주면서도 엄마는 내가 따라도 할 수 없는 향과 맛으로 김밥 밥을 꼭꼭 뭉쳐온다. 나는 김치를 한쪽 얹어 체할세라 꼭꼭 씹어먹는다.
가끔 할머니 집에 농사를 하러 가면 새벽부터 같이 김밥을 싸곤 한다. 동생이 오면 넷, 오지 않으면 셋이 뭉쳐 여전히 김밥을 라이브로 먹으며 수다를 떤다. 꼭 김치를 조금 볶아 김치김밥도 함께 만들어먹어야만 한다. 그 사이에 난 김밥 밥을 훔쳐먹느라 배가 다 찬다. 엄마는 밥 부족한데 왜 자꾸 밥을 먹냐며 재료 남는다고 야단이다.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이게 맛있을까. 따뜻하고 몰랑한 밥을 살살 펴서 김에 얹고 재료들을 얹다 보면 자꾸만 김밥 밥에 손이 간다. 거실에 가득 퍼진 꼬시고 따뜻한 향은 자꾸만 탐스럽게 나를 꼬신다. 집에서 끼니를 때울 때는 절대로 생각도 나지 않던 메뉴가 본가만 오면 간절해진다. 사실은 음식이 아니라 가족이 추억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