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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ug 25. 2021

메모하는 습관

다이어리와 무지 노트의 협업

                                                                                                                                               '약씨는 요즘도 메모하시네요 ㅎㅎ', 미팅을 가면 제일 자주 듣는 말이다. 성향상 많은 일들을 얇고 넓게 하는 전형적인 n 잡러인지라 모든 프로젝트와 학습, 일들은 정리를 해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분명 머릿속이 엉켜버릴 것이다. 대학생 때는 탁상달력으로 스케줄을 정리했지만,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 다이어리와 무지 노트를 꼭 세트로 들고 다니곤 한다. 다이어리는 일정 정리용이고 무지 노트는 기록용이다.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는 습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은데, 나 때문에 다이어리를 쓰게 된 친구들도 많다. 이게 그렇게 멋있어 보인다나 뭐라나. 커피를 마시시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난 뭔가 파파박- 떠오르는 일들을 바로 메모한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항상 테이블에는 내 다이어리와 삼색펜이 올라와 있다. 사람들은 항상 내 다이어리를 보면 꼭 '한번 봐도 돼요?'라고 물어본다. 난 늘 쿨하게 응한다.


작년은 연핑크색의 감성적인 다이어리였는데, 올해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받은 청록색 다이어리다. 다이어리를 고를 때는 꼭 만져보고 내부구성을 꼼꼼히 보고 골라야 한다. 이왕이면 얇고 데일리 백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가 좋다. 꾸밈은 적고 칸은 크고 명료한 것이 좋다. 내지는 뒷 면이 비치지 않는 종이로 골라야 한다. 나는 심플한 디자인에 일정만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스티커를 붙이거나 꾸미지는 않는다.


일정이 생기면 먼저 달력장에 시간과 이름만 간단하게 적는다. 미팅이 잡히면 달력장을 보고 일정을 조율한다. 매주 월요일, 이번주와 다음주 위클리를 꼼꼼히 쓴다. 전체 일정은 까만색으로 상단에, 오프라인으로 몸이 참석해야 하는 일정은 하단에 파란색으로 표시해 작성한다.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있는 주에는 왼편에는 메인 프로젝트랑 보조 프로젝트를 적는다. 보통은 그냥 통화하면서 중요한 게 있거나 하면 메모한다.


검은 펜으로 쓰는 일정 내용은 아주 디테일하다. 잊기 쉬운 치실하기, 머리 영양제 하기부터 00 사이트 문의, 수업 준비, 코딩 강의 듣기, 글쓰기 등이 들어간다. 파란색 펜으로는 pm5  문화가 있는 날 영화보기, pm8 중국어, pm7 꾸러미 수업, am11 지선이 만나기 등이 적혀있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 간결하게 적고 수행한 것은 파란색, 미뤄지거나 못하는 상황의 것은 빨간색으로 줄을 그거 표기하고, 그냥 안 한 것은 그냥 둔다.


이 것이 내 다이어리의 전부다. 그냥 할 일을 적고, 실제 하면 밑줄 긋는 것이다. 굉장히 간단하지만 다이어리의 효과는 엄청나다. 업무를 할 때에 난 아주 사소한 것도 잘 놓치지 않는다. 비슷한 것들은 묶어서 처리하기에 일의 선후가 보이고 시간도 아주 절약된다. 절약된 시간만큼 쉬면 좋은데 참지 못하고 또 다른 걸 벌리는 게 함정이지만. 내가 시간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다는 느낌은 꽤나 괜찮다.


무지 노트는 더 간단하다. 미팅을 할 때, 혹은 수다를 떨 때에도 '오, 이 아이템 괜찮은데!' 싶으면 바로 꺼내 키워드 중심으로 써 내려가면 된다. 주로 도식화와 그림을 많이 그리고, 낙서처럼 편하게 한다. 메모는 대화하면서 맥이 끊기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게 포인트다. 하다 보면 글도 빨리 써지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가끔 전에 들었던 주제로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촵촵 넘겨 보면서 참고하기 아주 좋다.


기록하기, 참 별 것 아닌 습관인데 정말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 첫 미팅에 항상 뭔가 '전문적이다'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동시에 수행하게 돕는다. 일을 빠르고 꼼꼼하게 한다는 평가도 쉽게 받게 도와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아닌 부분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무엇보다 현재의 일정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구축하기도 좋다.


은근히 업무 외적으로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래 중에 손으로 적는 메모를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낙서를 하게 되면 구조화에 아주 능하게 된다. pt로만 만나는 전형적인 도형 구조화랑은 아주 다른 개념이다. 구조화를 하기 위해 개념을 나열하면 제한이 있다. 개념을 먼저 다 펼쳐놓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얘깃거리가 훨씬 확장된다. 이게 별 차이 아니면서도 되게 다른 건데, 사업계획서를 적기 위한 회의보다 놀면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잇는 사업계획서는 훨씬 재밌고 친근하다.


아는 동생은 '언니는 회사원처럼 on, off가 없고 늘 on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 아이디어가 늘 필요한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노는 것도 일이 된다.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 가끔 지치기도 하지만, 좋게 보면 더욱 효율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메모를 하는 일은 놀면서 아이디어를 잇게 하고, 놀면서 또 일하게 한다. 자꾸 샘솟는 생각의 찰나를 낚는 일은 매력적이다.


나는 딱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는 잘 적는데 감정이나 속 이야기는 잘 적지 않는다. 감정들이 가득한 일기 같은 다이어리가 로망인데도, 취향이 그런 건지 적히지 않는다. 다행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매일의 생각들과 내밀한 속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다. 과거의 찰나의 감정들을 돌아보며 그때를 생생히 느끼고 있다. 이제는 온, 오프라인이 섞인 나의 메모 습관을 스스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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