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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09. 2021

오늘은 운동을 포기했습니다.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니 묘하게 몸이 무거웠다. 무시하고 운동을 갔으면 개운하게 50분간 땀을 뺐을 것이다. 평일 매일 아침, 루틴처럼 하는 새벽 운동은 내 체력의 가장 큰 지지대라는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닦고 물을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차키도 찾았다. 나서기 직전인데, 왠지 잠이 깨질 않았다. 그러다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책임감이 강해 따로 일이 있지 않으면 강의 하나도 절대 빠지지 않으려 한다. 다른 일이 있어서 빠지는 건 죄책감이 없는데, 이유 없이 빠지는 날은 마음이 편치 않다.  분명 평소 같았으면 머리 한 번 흔들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서 일까, 직장을 그만둔 지 벌써 3개월이 지나서 일까, 나는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속으로 숨었다.


다시 일어나니 8시, 한 시간 반 정도 푹 잤다고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다. 글도 다시 쓰고 싶고,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아침이라 기분 좋게 pc를 켰다. 아침운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신경은 따로 쓰이지 않았다. 혼자만의 책임감을 늘 내려놓고 싶던 터라 이러한 변화가 반갑다. 그간 많은 프로젝트들과 동시다발적인 활동들은 즐거웠지만 또 동시에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퇴근 후에는 문화기획자로 늘 다양한 책임감에 눌려있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 도시로의 이동도, 퇴사도 도망의 일종이었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끈기가 없다는데, 난 일을 벌이기도 좋아하고 끈기도 있는 편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애쓴 탓에 늘 결과물은 좋았지만 스스로는 그 과정에서 너무나 지쳐갔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냥 운동 한 번 안 갈 수 있는 건데. 주 5일 가는 운동 한 번 쉰다고 뭐가 그렇게 큰 일이라 생각했을까. 촘촘한 책임감이 날 많이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가슴을 에워오게도 했다. 호캉쓰를 가서도 노트북으로 디자인을 하게 했고, 여행을 가서도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게 했다. 그냥 특별한 날은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건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그런다. 올해까지 쉬기로 했으면 그냥 쉬면 되고, 작가를 준비하기로 했으면 그냥 준비하면 된다. 돈벌이는 내년부터 고민해도 되고, 정 안되면 벌어놓은 돈을 써도 된다. 근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이렇게 내년을 걱정하고 있을까. 내가 쉬자고 결정한 기간에 실제로 쉬지도 못하면서. 남자 친구는 항상 말한다. "약아, 너는 쉬는 연습이 필요해."


사업을 하고 싶으면 그냥 시작하면 되고, 프리랜서를 하더라도 진행하면 된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퇴근하고는 늘 프리랜서로 일을 했으면서, 사업과 프리랜서를 정면으로 도전하기는 무섭다. 그래서 이것저것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까 고민하며 막상 글과 그림 작업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내 색깔대로 뿜어 나가면 되는데, 남들은 어떻게 하나 괜히 기웃대면서 시간만 버리는 꼴이다. 쉬려면 쉬고, 말려면 말지.


기획이란 일을 하면서 모든 결정과 책임은 늘 나에게 있었다. 그냥 회사원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는데, 타고난 기질이겠지만 혼자 열심히 오버했고, 스스로 시간을 더 써서 옥죄었다. 그럴 시간에 내 일에나 집중하고 내 그림 작업이나 다양히 할 것을. 지금도 운동하느라, 영화 보느라, 공부하느라, 책 읽느라 막상 글과 그림은 시간이 없어 집중하지 못한다. 아무리 다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모든 질은 양에서 나온다.


일단은 쉬자. 쉬면서 글과 그림 작업을 즐겁게 꾸준히 하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기웃대지 말고 부러워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못생기더라도 내 색을 찾아 분명히 키우자. 이 간단하고 당연한 일도 내겐 연습이기에, 매일 반복하고 다짐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잠재우는 일, 마음 편이 그냥 쉬는 순간을 즐기는 일. 사고를 바꾸는 일은 당연히 어렵지만 나는 오늘도 연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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