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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ug 27. 2021

이왕 하는일, 조금만 더 잘하자

100을 하고 싶으면 120에 도전하기

나는 어디든지 수영을 가면 수영모와 수경을 챙긴다. 화려한 비키니와 고운 화장을 한 또래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외모 대신, 모두를 압도하는 예쁜 수영 포즈를 가지고 있다. 새벽마다 출발하는 7시 반 수영장에서는 유일한 20대 고급반 여자애였다. 어릴 때 몇 년 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도 나름 초급반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성실이었다.


나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큰 키에 어깨가 넓고 팔다리가 긴 체형이다. 기초반 첫 출근에 수영반 강사님께서는 보자마자 '딱 수영하기 좋은 체형이네'라고 말씀하셨다. 왠지 그 기대를 저버리기가 싫었다. 판을 잡고 발차기만 하는데도 주말에도 나와서 매일 연습하곤 했다. 힘도 있는 몸이라 진도는 빠르게 올랐다. 발차기는 금방 자유형이 됐고 배형 평형 접영까지 순탄히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중급반에 갔고, 천천히 1번 주자가 됐다. 계속해서 신입들은 들어오니 순탄히 고급반에도 왔다. 선생님의 레슨은 중급반이 훨씬 세세하다. 고급반은 거의 뺑뺑이식이라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주면 뒷사람들이 밀린다. 그런데도 나는 고급반에서 포즈가 가장 빠르게 좋아졌다. 바로 공짜 개인 레슨 때문이었다.


고급반에는 10년, 20년 수영을 꾸준히 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40분의 레슨이 끝나면 약 15분을 혼자 더 연습한다. 어느 날부터 옆에서 다양한 고급반 선배님들이 내 포즈를 봐주고, 잡아주고, 피드백해주기 시작했다. 보통 수강생들은 모두 수업이 끝나도 조금 더 남아 개인 연습을 하고 간다. 근데 내가 그 옆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느린 속도로, 아주 수정할 점이 많은 수영 포즈와 함께.


기초반, 중급반에서도 끝나고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포즈에 대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항상 함께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결론은 우리끼리 '그런 거 아닌가...?'로 끝나곤 했다. 수영은 요가나 댄스와 다르게 거울이 없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고, 다른 포즈를 해도 크게 통증이 없으며, 보고 할 사람이 없다. 게다가  물 속이면 더욱 혼란스럽다. 스스로의 폼을 알기도 유난히 힘든 운동이다.


주 5일, 빠르면 1년이면 기초반에서 고급반으로 올 수 있다. 그 1년만 성실히 다니면 고급반에서는 실력이 쑥쑥 늘 수 있다.  보통은 1번 주자로 와야지 다음 반으로 올라오기가 훨씬 수월한데, 앞번 주자로 올수록 절대로 후퇴하면 안 된다. 한번 앞에 섰다가 힘들다고 뒤로 오게 되면 이미 심리적 장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1년만 성실하면, 그다음에는 수영 폼이 꽤나 빠르게 교정될 수 있다. 이러면 또 스피드가 좋아지고, 대회나 자격증 등의 기회도 보다 쉽게 열리게 된다. 물론 수업이 끝나고 바로 수영장을 나갔다면 포즈가 크게 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지 하면 할수록 수정점이 더 보인다. 눈은 높아졌는데, 몸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것이다. 고 간극은 의외로 정말 재밌다.


처음에 조금만 가속도를 붙이면 나중에 전체 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뭐든 처음에 조금만 더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신경 쓰면 된다. 미술 레슨을 받으러 가면 작가님께서 작품을 봐주실 때, 그냥 보고 있는 사람이 있고 미리 자신이 생각하는 점들, 표현 안 되는 점들을 알려주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더욱 빨리 늘까, 신기하게도 기본기가 채워지면 그 분야는 더 재밌어지고 더 궁금해진다. 


과연 수영과 미술만 그럴까, 나는 내가 배우는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차이를 본다.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소리도 잘 내지 못하는데 고향의 봄을 치는 것을 재밌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케치북 가득 직선 선만 채우는 게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반려견을 그리는 것보다 재밌겠는가. 40분을 내리 판잡고 발차기만 반복하는 것이 접배평좌에 스타트를 뛰는 것보다 흥미롭긴 어렵다. 


배우는 것뿐만 아니다. 오늘 아침에 갔던 새로운 카페에서 평상시와 같이 "어떤 것을 주문하시겠어요?"를 들었다면 분명히 사천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카페 사장님은 "아침 드셨어요?"로 말을 꺼냈고, 나는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로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트를 만 천 원주고 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을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된다.


특히 처음에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궁금해하면 된다. 잘하던 못하던 연습 해보고, '어 00은 이렇게 하는 건가? 아닌가?'정도의 궁금증만 가지고 다음 레슨에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된다. 간단하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는 것들이니까. 딱 3번만 해보면 선생님은 분명 나를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들이 쌓이면 엄청난 차이가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런 소리도 들을 것이다. "걘, 머리가 좋아서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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