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배우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기획팀 팀장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았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실제 업무능력과 분명 다른 분야의 일이었고, '관리자'라는 일은 수행자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그렇다고 업무를 맡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른 월급에 비해서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고, 신경 써야 할 일은 배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참 잘했다 싶은 것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름 관찰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중 몇 가지를 풀어써보려 한다.
문화직종은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한다. 타인과 협력하다 보면 일을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팀원이던 외부인이고 말고를 떠나서,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기가 알알이 밴 사람은 업무능력도 빈 곳이 없었다. 혹여 비거나 실수하더라도, 서로 기분 좋게 수정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은 모두 같아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비록 메일로만 만나게 되는 사람이더라도, 사람의 관계에서는 지켜야 할 사회적 온도가 있다. 교과서로만은 절대 배울 수 없는 친절한 어투, 자연스러운 담화 순서,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명확히 명시하는 것과 부드럽지만 능동적인 태도가 있다. 이 사회적 온도는 별 것 아니지만 너무나 중요하다. 아무리 pc로 일을 한다지만 결국 결정은 사람이 한다. 비대면일 뿐, 결국 의사결정은 사람과 사람이 맞대어한다.
영어나 중국어를 잘하려면 먼저 국어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개인 능력이 너무나 중요한 일부 직종이 아니라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기본적으로 먼저 배워야 한다. 회사를 다닌다면 소통하지 않고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업무가 몇이나 될까. 프리랜서거나 사업을 한다면 사람과의 소통은 몇 배가 더 중요해진다. 성인이자 사람으로서 성숙하는게 우선이고, 업무능력은 그다음이다.
최근에 지역 도서관 교육 관련 어떤 점을 문의하려고 담당자님께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로는 내 또래거나 조금 어려 보였는데, 너무 예의 없게 전화를 받아서 어안이 벙벙했던 적이 있다. 공무원으로서, 담당 사업의 문의점을 받는 게 본인의 역할이면서 기본 개념도 없이 응대하다니. 단 3분의 통화였지만, 인간성이 의심스러웠다. 3분의 통화에서 잠깐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며칠 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듣는 교육의 이야기가 나왔고, 이런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었다. 이 좁은 지역에서 다른 친구가 실명을 말하면서 그분이 원래 퉁명스럽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물론 그분은 아주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무원 시험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도서관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실명은 불쾌함으로 거론될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담화는 이러한 벌을 낳는다.
사회적 온도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려 이 글을 클릭한 사람들은 그래도 기저에 조금 더 남들을 생각하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유치원에서 배우는 정도만 행할 수 있다면 사회적 온도는 충분히 맞출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본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정말 많지 않다. 나이와 직급, 외모와 직종을 떠나서 이러한 사회적 온도만 맞춘다면 당신은 어디서나 이미 호감형일 것이다.
나와 한 번이라도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들은 아직 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일도 함께 하기를 원한다. 일단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람'과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이러한 사람들이 가끔 있었기에 무슨 감정인지 안다. 누군가 내게 보이는 업무적 호감과 호의를 자주 느끼게 되면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해도 좋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다.
상사와 후임, 회사와 직원, 클라이언트와 수행자는 당연히 서로 요구조건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인상을 쓰고 딱딱하게 힘겨루기 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대표가 아닌 이상, 상대회사의 담당자도 나와 같은 회사원일 뿐이다. 기간이든, 페이든 원하는 것을 먼저 내부적으로 확실히 정하고 명시하라. 표현할 때는 친절함이라는 포장지만 한 꺼풀 둘러싸서 전달하면 된다. 가끔은 농담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협업을 하다 보면 내용은 두리뭉실한데 양은 많고 일의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지 않는 자료를 자주 접한다. 사실 명확히 내용을 정리해서 친절함을 한 스푼 넣은 업무제안은 잘 보이지 않는 편이다. 간단하게 명시할 수 있는 내용을 두리뭉실하게 늘여쓴 것 자체도 사회적 온도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상대의 시간을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변경사항이 자꾸만 생겨 짧게 자주 오는 연락만큼 엉망인 사회적 온도는 없다.
"이 일은 1~10인데, 양 씨는 8의 **을 맡아서 해주시기를 제안드립니다."와 같은 글이 한 줄만 있더라도, 나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통화로만 장황히 설명하고 전체적인 1~10을 설명하는 첨부파일만 받으면 아찔해진다. 그럼 이 방대한 프로젝트를 전부 다 읽고 내가 **과 $$을 할 수 있다고 역제안을 하라는 건지, 어쩌란 건지 명확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다시 질문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역할인지 아직 정하지 않아 그 후에 다시 연락을 준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시간도 당연히 사회적 온도를 맞추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연락할 때에는 내부적으로 충분히 소통이 된 후여야만 한다. 심지어 오프라인 미팅을 하는데도, 아직 고민 중인 내용들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너무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경우의 협업은 왠지 기대되지 않는다. 내가 굳이 전력으로 질주하지 않더라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회적 온도를 잘 맞춰 명확한 업무 전달 메일을 받는다면, 나도 모르게 이미 그 업무에 긴장하고 있다. 잘 알겠지만, 모든 퀄리티는 긴장에서 나온다. 오프라인 사회에서는 감정이 우선이다. 사람인지라, 더 친절하고 일하기 편하게 해주는 담당자의 일은 더 신속 정확하게, 퀄리티 있게 쳐주고 싶다.
팀장의 이러한 태도를 팀원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되거나 팀이나 브랜드가 되면 다양성에 유리하다. 사람들은 본인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협업할 사람들은 아주 신중히 고른다. 다양성은 다양성을 낳고, 새로운 기회를 빨아들인다. 경력과 능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장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따뜻한 사회적 온도를 유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