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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Sep 19. 2021

모두 다른 삶의 속도

모든 사람의 삶의 속도는 딱 적당하게 유지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보니 사실 사람들이 삶을 사는 속도는 모두 다르다. 동갑인 어떤 친구는 이제 연애를 시작해 꿀이 떨어지기도 하고, 다른 친구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운 지가 한참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이 훌쩍 결혼을 하기도 하고 해외로 떠나기도 한다. SNS에서 오랜만에 근황을 알린 선배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다른 내 동갑인 친구는 박사과정을 밟는다. 40대, 50대 미혼도 있고 20대 비혼도 있다.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수행해야 할 업무가 정해져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이제는 공감하기 힘들다. 살아보니 생각보다 규정된 보통의 결을 엇나가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현생이란 모르겠고 일단 피곤해서 좀 쉬어야 한다며 직장을 그만둔 나라서 그럴까, 주변에 보통의 삶을 정의할 기준조차도 별로 없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잘난 거고 속도가 느린 사람은 못난 걸까? 


그렇다면 대학을 2번이나 다니고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20대 후반에 글과 그림 한답시고 백수이며 5년이 넘게 연애 중인 내 삶이 가장 느리고,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별로 그렇게 처연한 눈으로 날 보지 않는다. 나도 스스로가 별로 짠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만 살아서 가끔 짠하지. 인생의 속도로만 따지면 남들은 대리로, 팀장으로 달려 나가는데 혼자 갑자기 잠 온다며 돗자리 피고 낮잠 자는 꼴이다.


관찰해보면 사람들의 삶은 정형화되어있지 않다. 각자의 결로 폭발적으로 뻗어나간다. 누군가는 마구 뛰기도 하고 누군가는 천천히 걷기도 하고 나같이 기어가는 사람도 있다. '어, 이 길이 아닌데' 하고 주변을 살피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나 눈치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의 속도는 다르기에 내 속도를 타인에 맞출 필요는 더더욱 없다. 들리는 조언마저도. 사람은 어차피 본인이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서는 짐작할 뿐이다.


예전엔 팀장이라고 하면 다 일을 잘할 줄 알았고 아줌마라고 하면 다 어느 정도 촌스러운지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럴 리 없다. 끝내주게 세련된 아줌마 팀장도 있고, '와 저렇게 일해도 월급을 받네' 싶은 팀장도 있다. 내 주변엔 평소 사무라이처럼 하고 다니지만 댄디한 옷을 파는 쇼핑몰을 칼같이 이끄는 대표도 있다. 혀가 짧아 말끝이 명확하지 않은데 오히려 그걸 특징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서 인기가 많았던 크리에이터도 있다.


살면서 편견은 자꾸만 깨지고 있다. 왜냐면 반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중학교 동창 중에 아이를 일찍 낳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나중에 취업은 어떡하려고 그러지..' 싶었는데, 그 친구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보다 훨씬 일찍 취업을 했다. 그걸 보고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함부로 남의 삶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삶은 별로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SNS로 남들의 소식을 쉽게 접하면서 '걔가 이거 할 동안 나는 뭐 하고 있었지...'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공평하고, 당장 기억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동안 난 분명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냥 과거의 나를 믿으면 된다. 요즘은 역으로 '약씨는 어린데 대단하네요... 난 20대 때 노느라 바빴어요.'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당신들의 놀았던 20대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지지한다. 노는 게 좋았으니까 했겠지요.


삶의 속도는 모두가 다르다. 그리고 모두가 달라야 한다. 뭐든 다양한 사회가 건강하고 창의적인 사회니까. 당신이 스스로 정의한 보통의 삶에서 어긋나고 있다면 사회에 더욱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꼴이다. 최소한 남들에게 좋은 사례는 되고 있는 거니까. 보통과 안정이 각광받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누군가 균열을 내고 누군가 채워주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만히 있어도'이런 것도 있었어?'싶은 삶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가 왔다. 이런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흘러가는 삶의 플로어가 비슷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내 삶의 속도에 확신을 가지자. 모든 사람들의 삶의 속도가 딱 적당한대로 흐르고 있다. 강의 유속도 매번 같은 속도를 유지하지 않는다. 느리게 흐르는 구간도, 빠르게 떨어지는 구간도 있다. 원하지 않더라도 삶의 속도는 조금씩 변화할 테니, 지금의 흐름을 마음껏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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